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재단 새 책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분석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발간-

 

 

5년에 걸친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 연구의 결실

재단이 2025년 6월에 발간한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매우 적으며, 그중에서도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연구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근대 동남아시아와의 문화교류나 정치적 관계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1950년대 이후의 현대사 연구에 집중된다. 동남아시아는 전근대에 중국과 관계가 깊었으며, 19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 나라가 대부분이어서 3년 반에 불과한 일본점령기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점차 발언권을 강화해 가고 있는 동남아시아와의 외교 및 교류를 위해  더 이상 동남아시아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특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2020년부터 일제침탈사의 일환으로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을 연구해 왔고, 그 다섯 번째 성과가 바로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의 발간이다.

 

책표지

 


이 책은 동남아시아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 고토 겐이치(後藤乾一)를 필두로 한국사, 일본사, 중국사, 프랑스사, 베트남사, 사회학 분야 7명의 연구자가 쓴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 연구의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연구 분야를 확장해서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를 다양한 주제로 분석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일본점령기 역사가 남긴 충격과 유산

총 9편의 논문을 수록한 이 책은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면서 그 사회에 가한 충격과 현재도 남아 있는 역사적 유산을 다루고 있다.

일본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동남아시아 각국을 점령한 후 태국과는 동맹관계를 맺었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대해서는 주 종주국 프랑스(비시정부)와의 공동 지배를,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직접 군정을 실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불리해지는 1943년 일본은 버마와 필리핀에 대해 독립을 부여하면서 그 대가로 미국과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구했다. 한편, 동남아시아 총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민도(民度)가 낮다’는 이유로 독립을 검토하지 않다가 1944년 9월에서야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수상이 독립을 언급했다. 이 책에서 분석한 버마, 필리핀, 베트남 등 친일정권의 특성과 인도네시아의 독립 과정을 통해 ‘대동아공영권’ 안에서 각국의 위상과 구 종주국 및 연합군과의 관계 차이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원동원과 금융 재편을 통한 일본의 경제적 침탈은 전후 동남아시아 각국의 산업과 경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강제동원되어 자바를 비롯한  남방 각지로 보내진 로무샤(勞務者)와 남양군도로 보내진 조선인 노무자 문제는 지금까지도 일본과의 관계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침략을 전쟁범죄로 기소하면서도 식민지로서 주권을 갖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각국을 일본 침략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전후 전범재판의 한계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면서 가했던 충격과 그 유산이 단지 동남아시아에 국한되지 않으며, 타이완과 한국, 만주국, 그리고 중국의 친일 정권들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과 지배, 통치 정책이 여러 지역에서 공통된 양상을 보였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이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동남아시아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제강점기 35년의 유산

한국은 35년, 타이완은 50년,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3년 반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이라 부르지만, 이는 단순히 전쟁의 끝난 것을 의미하는 날만은 아니다. 군부와 정부가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국민에게 강요된 희생은 교묘히 감추고, 원폭 피해만 부각하는 것이 최근 ‘종전기념일’ 행사의 특징이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남긴 상흔은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전역에 깊이 남아 있다.

일본 군정이 동남아시아 각국에 미친 영향, 즉 전쟁 이전과 전후 사이의 단절과 변화를 초래한 '충격'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컸고, 필리핀에서 가장 작았으며, 버마를 비롯한 다른 지역은 그 중간 수준이었다고 평가된다. 일본점령기 동안 동남아시아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겐페이타이(憲兵隊)’는 지역에 따라‘ 긴페이타이’, ‘간파이타이’ 등 본래의 일본 발음과 상관없이 현지어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도 일본 군정기의 공포와 착취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강제동원된 노동자를 의미하는 로무샤는 또 어떤가? 전쟁 완수를 위한 긴급한 노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철도 건설 현장과 태평양의 군도 등 남방 각지로 파견된 로무샤의 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전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배상 교섭에서 제시한 수치는 400만 명에 달했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스무 살 전후의 어린 여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서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는데, 전후 보수적인 동남아시아 사회의 침묵 속에서도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고백하는 증언자가 나왔다.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일본 지배의 ‘충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각국은 전후에 정치적 교섭이나 독립전쟁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독립했지만, 3년 반에 불과했던 일본 지배의 ‘유산’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우선 정치적 연결성으로는 일본점령기 동안 일본에 협력했던 아버지의 정치적 입지를 계승한 경우다. 2001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인도네시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수카르노푸트리란 ‘수카르노의 딸’이라는 의미다. 한편,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영국에서 성장해서 영국인과 결혼한 아웅 산 수 치는 1988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오랫동안 주부로 살아왔던 그가 정치지도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웅 산의 딸’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선거를 통한 결과였지만, 2013년 대한민국에서도 아버지의 뒤를 이은 딸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일본 군정 아래에서 1943년 10월에 창설된 자바향토방위의용군(PETA)은 네덜란드와의 독립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상당수가 인도네시아 독립 후 국군의 중핵이 되었다.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무려 31년간이나 집권했던 수하르토는 PETA 출신이었다.

한편,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 산 수 치 정부를 무너뜨린 미얀마 군부의 뿌리는 아웅 산이 버마 청년들을 탈출시켜 하이난섬(海南島)에서 일본군의 훈련을 받게 한 이른바 ‘30인의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버마독립의용군으로 일본군과 함께 버마로 진격했으며, 버마방위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943년 일본에 의해 ‘독립’을 부여받은 버마국의 국군이 되었다. 그리고 아웅 산은 1945년 3월에 이들을 이끌고 일본에 대항해서 싸웠다. 오늘날 미얀마 군부가 아웅 산 수 치를 가택연금시키면서도 그 이상의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아웅 산의 딸이기 때문이며, 아웅 산 수 치가 군부의 로힝야족 집단학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미얀마 군부가 아버지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제강점기 35년의 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정리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이 광복 8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주는 숙제다.


재단의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 시리즈 완간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 발간으로 5개년에 걸친 재단의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에 관한 연구는 일단락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총 5권의 책이 발간되었다. 우선 일반 독자들이 가장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전시 일본의 프로파간다』를 권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아사히신문』 ,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에 실린 보도사진과 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소재로 그린 ‘전쟁화’를 엮은 책으로, 전쟁의 전개 과정과 전시 국민생활, 당시 일본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펼친 프로파간다를 화보처럼 넘기면서 학습할 수 있다.

다음으로 『대동아공영권의 허상과 모순-『사진주보』로 보는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은 중일전쟁 이후 일본 정부가 발간한 프로파간다 저널 『사진주보』에서 동남아시아 관련 기사를 총망라해 해설한 책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전개와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정책,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의 상황 등을 사진 자료와 함께 개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1941~1945년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일본점령기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일본의 동남아시아 점령과 지배』와 일반 독자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모은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이 있다.

한편, 재단 내부자료로 발간한 『동남아시아의 역사 인식과 기억: 일본의 침략과 지배』는 동남아시아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점령기에 관한 내용만을 선별하여 번역하였다.

 

스크린샷 2025-07-25 083700

재단의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