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재단 독도실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 위치한 홋카이가쿠엔대학(北海学園大学) 국제회의장에서 ‘바다와 국경-남쿠릴열도 및 JDZ 문제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재단 기획연구 ‘일본의 영토문제 ‘일체화’에 관한 정책대응 연구’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역사·사회·경제·정치 분야의 한일 전문가들이 참석해 학술적으로 교류하는 자리였다. 세미나는 모리시타 히로미(森下宏美) 홋카이가쿠엔대학 학장의 개회사와 홍성근 재단 독도실장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지역의 관점에서 보는 남쿠릴열도와 해양영토
세미나에서는 남쿠릴열도와 주변 해양을 둘러싼 현지 연구 동향과 쟁점, 지역사회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먼저 다카다 요시히로(高田喜博, 홋카이도국제교류·협력종합센터 연구원)는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일 교섭의 역사적 전개와 한계’를 주제로 발표했다. 다카다는 1855년 러일화친조약부터 1956년 일소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러일 간 국경 획정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았다. 그는 아베 정권 시기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27차례나 정상회담을 열었음에도 러일 교섭이 사실상 동결된 현실을 지적했다. 향후 출구전략으로는 중러 국경 획정 모델과 같은 현실적 타협안을 제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최악의 국면을 맞은 러일 관계를 재구축하려면 동북아 안보 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관계 정립을 위해 평화조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하마다 다케시(濱田武士, 홋카이가쿠엔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수산자원과 영토문제를 결합한 ‘접경지역의 어업외교’를 발표했다. 하마다는 ‘가이가라섬(貝殻島) 다시마 채취 협정’과 ‘안전조업제도’의 민간위탁 방식을 사례로 제시했다. 국경지대 연안 지역의 어민들이 러시아 측에 채취 비용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등 사실상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교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현(고려대학교 BK21 중일교육연구단 연구교수)은 ‘일본의 북방영토교육 및 홍보자료와 영토담론의 국내적 재생산’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승현은 교육과 홍보라는 두 축을 통해 일본이 어떻게 영토 인식을 고착화하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2008년 학습지도요령 개정 이후 일본의 영토 관련 기술이 독도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남쿠릴열도를 포괄하는 이른바 ‘영토문제의 일체화 현상’이 나타났으며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전반에서 ‘고유의 영토’ 등의 기술이 고착화되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필자와 박창건(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은 ‘일본의 해양자원개발과 한일공동개발협정’을 주제로 발표했다. 두 발표자는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제1차부터 제4차까지 일본 해양기본계획의 주요 내용과 전략적 변화를 살펴보았다. 일본은 ‘국익의 보호·증진’을 전면에 내걸며 정부 주도로 해양자원을 개발 관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 관련하여, 일본 내 논의되는 시나리오로서 ① 협정의 형식적 유지를 통한 갈등 방치, ② 해양환경, 기후변화, 친환경에너지 등 다층적 협력모델로의 기능적 전환, ③ 협정 만료 후 사법적 중간선 원칙 관철을 제시했다. 동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 갈등과 해양 안보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구조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홋카이도와 지역사회, 남쿠릴열도 문제를 향한 심층적 접근
이번 학술세미나에는 홋카이도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학자와 전직 관료, 단체 관계자들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외교사·어업·교육·해양자원 등 다양한 관점에서 남쿠릴열도와 해양 현안을 논의했다. 러일 교섭의 역사적 전개, 접경 수역에서의 실질적인 어업 협력과 변천 과정, 일본 국내 영토 교육과 홍보의 제도화와 담론 재생산,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한일대륙붕 공동개발까지 융합적인 접근을 펼쳤다. 이번 세미나는 남쿠릴열도 문제를 역사적·정치적 쟁점에만 국한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주민, 경제협력, 교육을 아우르며 다층적 관점에서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홋카이도 지역사회의 인식과 관점을 심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일본의 해양·영토 전략을 입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