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한국에서 그를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1993년 8월 4일 관방장관 재임 당시 담화를 발표해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운영, ‘위안부’ 이송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慰安婦問題とアジア女性基金(https://www.awf.or.jp/2/survey.html)
고노 담화가 발표되기까지
1990년대 초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 시민사회의 활동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주요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1990년 5월 여성단체들은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강제동원, 원폭 피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규명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1991년 12월에는 김학순을 비롯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운영에 관여했다며,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 규명과 관련 자료 제공을 요구하였다.
1992년 1월 11일 『아사히신문』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가 방위연구소에서 발굴한 문서를 보도하였다.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되면서 큰 반향이 일었다. 이틀 뒤인 13일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관방장관은 일본군‘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경영 등에 일본군이 어떠한 형태로든 관여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였다. 이어 1월 17일 방한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도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군의 관여를 부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추가 조사를 약속하였다.
같은 해 7월 6일 가토 관방장관은 ‘한반도 출신자의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내각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소 설치와 운영, ‘위안부’ 모집 및 관리, 위생 관리 등 여러 분야에 일본 정부와 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였다. 한국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더욱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였다. 1993년 3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물질적 배상보다 역사적 진실 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한일 외교부장관 회담에서도 한국 측은 강제성의 인정과 철저한 조사, 역사적 교훈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고노 담화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
1993년 8월 4일 고노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가 추가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밝혔다. 담화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안소는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운영되었으며, 수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동원되었다.
둘째,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설치와 관리, 위안부의 이송 과정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셋째, 위안부 모집은 주로 군의 요청을 받은 민간업자가 담당했지만, 감언과 강압 등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넷째, 일부 지역에서는 관헌이 직접 위안부 모집에 관여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다섯째,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자유가 제한된 강제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매우 참혹한 것이었다.
여섯째, 피해자의 상당수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이었으며, 모집과 이송, 관리 과정 전반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
일곱째, 일본 정부는 이러한 제도가 수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훼손한 사실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였다.
특히 중요한 점은 ‘강제성’을 협의의 의미인 물리적 강제연행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노 관방장관은 담화 발표 직후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강제성이란 군이나 경찰이 직접 폭력을 행사해 여성을 끌고 간 경우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한 모집과 위안소에서 자유가 제한된 생활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하였다.
고노 담화를 둘러싼 갈등
고노 담화 발표 직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사죄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에서는 담화가 강제연행의 책임을 민간업자에게 돌리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본에서는 고노 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많았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은 「‘강제성’을 인정한 ‘위안부’ 조사」라는 사설에서 “넓은 의미라고는 하나 ‘강제성’이 있었던 이상, 그 뜻에 반하여 위안부가 된 여성들의 고통과 치욕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녀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사실을 공표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산케이신문』을 제외한 주요 일간지 역시 대체로 이와 유사한 논조를 보였다. 담화 발표 당시 일본 사회는 강제성을 군과 관헌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에만 한정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에 반한 동원과 위안소에서 이루어진 강제적 생활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일본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고노 담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조사 자료에서 군과 관헌이 조직적으로 여성을 강제연행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문서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허위로 판명된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의 증언이 담화 작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취임 이후 더 늘어났다. 아베 총리는 2007년 3월 각의 결정을 통해 군과 관헌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2014년에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검증하였는데,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있었지만, 담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고노 담화
고노 담화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노 담화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2007년 미국 하원은 고노 담화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비판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올바른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이어 네덜란드와 캐나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최근 일본의 공공 및 민간 관계자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지한 사과와 참회를 표명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관련 담화를 희석하거나 철회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 하원 결의안, 2007. 7. 30.
일부 일본의 관료들은 위안부들의 고통에 대해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1993년 ‘위안부’ 관련 담화를 희석하고 철회하기 위한 유감스러운 의도를 최근 표명해 왔다. 따라서 캐나다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의 유감 표명을 후퇴시키는 어떠한 발언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캐나다 의회 결의안, 2007. 11. 28.
이러한 국제사회의 비판 이후 일본 정부는 공개적으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군과 관헌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기존 견해를 반복하면서, 담화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오늘날 고노 담화가 갖는 역사적 의의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고노 담화에 관한 설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보다 축소되었으며,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고 피해자가 성노예도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2021년 4월 각의 결정에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하면서도,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연결될 수 있기에 교과서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노 담화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 출발점이자 중요한 이정표라는 의미를 지닌다. 지난 6월 17일 열린 제1757차 수요시위에서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이사장은 고노 담화가 가진 일정한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의 역사 부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고노 담화가 가진 역사적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오늘날 고노 담화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그가 남긴 고노 담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역사화해를 위한 평화자산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기대하며,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 전문을 싣는다. 이를 통해 고노 담화의 내용과 역사적 의미를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 관방장관 담화 전문]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되었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나아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위안소가 설치되고,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는데, 이 경우에도 감언, 강압 등에 의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에서 처참한 것이었다.
또한, 전장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한다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당시 한반도를 우리나라가 통치하고 있으며,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한 것으로,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실시되었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본 건은 당시의 군 관여 아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낸 문제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다시 새롭게 그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걸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진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우리나라로써 어떻게 나타내느냐는 점에 관해서는 有識者의 의견을 등을 참고하면서 앞으로도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겠다. 우리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같은 잘못을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새롭게 표명한다.
덧붙여 본 문제에 관해서는 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있으며, 또한 국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정부로서도 향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하여 충분히 관심을 두겠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