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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일제는 식민지 조선 통제를 위해 왜, 어떻게 노래를 검열했는가?
  • 문옥배 서천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이 책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의 도구로 노래를 어떻게 검열·통제했는지를 다룬다. 재단의 일제침탈사 연구총서 일제의 대중문화통제: 연극‧영화‧가요』(이하나·박영정·한상언·문옥배, 2023)를 바탕으로 핵심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내용이 궁금한 독자에게는 일제의 대중문화통제』를 권한다.
 
일제의 노래검열: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다
『일제의 노래검열: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다』(일제침탈사 바로알기 35)
 

식민지 조선의 사상통제 도구였던 노래검열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사상통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더하여 일제는 노래가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성을 매개하는 도구로서 사회성과 대중성을 갖는다고 인식하여 식민지 조선의 노래를 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제의 대상은 노래 외에 노래책(출판물), 음반, 흥행(공연), 가창, 교수(敎授), 공연예술인 등 노래와 관련한 전 영역으로 삼았다. 일제는 노래통제를 위해 관련 법률을 제정했고, 그 통제장치로 검열을 선택했다. 곧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노래통제는 기본적으로 검열을 통한 사상통제였고, 그 기본 틀은 치안검열(치안방해)과 풍속검열(풍속괴란)이었다.
 
노래검열은 조선인의 의식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 조선을 일제에 의해 계획‧관리되는 사회로 만들었고, 식민지배체제의 규범‧가치 등을 선택적으로 전파하도록 하였다. 검열 과정에서 금지처분되지 않기 위해서 식민지배체제의 목소리는 생산의 기본원칙으로 작용하였다. 
 

일제의 노래검열 실상을 밝힌 10개의 질문
 
이 책은 일제가 ‘왜’, ‘어떻게’ 노래를 검열했는지 10개의 질문(주제)을 던지고, 그에 답한다. 답변은 조선총독부 내부문서, 적용 법률, 언론을 통해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가 스스로 남긴 기록에 근거한다. 이제 10개의 질문별로 어떤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질문 1(제1장). ‘일제는 왜 노래를 검열했는가?’ 일제는 식민지 통제를 위해서 무엇보다 사상을 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노래가 사상을 매개한다고 생각했다. 즉 노래를 사상도구로 인식했고, 검열을 통해 통제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추측이 아닌 당시 조선총독부가 기관지에 발표한 글을 통하여 그 객관적 근거를 살펴보았다.
 
질문 2(제2장). ‘일제의 노래검열은 누가(기구) 담당했는가?’ 노래검열은 식민 초기에는 조선총독부 고등경찰과(1910~1925)에서, 1926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1926~1943)에서 담당하였다. 즉 일제 초기의 노래검열은 경찰이 담당하였으나, 노래의 사회성과 대중성을 인식하면서 검열전담기구를 조직하여 시행한 흐름을 다루었다.
 
질문 3(제3장). ‘일제는 노래텍스트를 어떻게 검열했는가?’ 일제는 노래책에 대해 출판법(1909)을 적용하여 사전검열을 하였고, 음악교과서(창가책)와 음반해설서도 검열하였다. 그 검열 내용과 금지노래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선조선가요집표지 
    1932년 1월 치안방해로 금지된 『정선 조선가요집 제1집』       
(핸드포드 편, 조선가요연구사, 1931)   
 
 청년노래가락창가표지 
 1938년 9월 20일 풍속괴란으로 금지된 『청년노래가락창가』
 (정경운, 광문서시, 1937)        
 
질문 4(제4장). ‘일제는 가창과 교수를 어떻게 단속처분했는가?’ 일제는 불온창가로 규정된 노래를 공개적으로 부르는 행위와 교수행위를 보안법(1907)과 치안유지법(1925)을 적용하여 단속하였는데, 그 단속 처분된 사건과 내용을 다루었다. 
 
질문 5(제5장). ‘일제는 가요음반을 어떻게 검열했는가?’ 일제는 축음기레코드취체규칙(1933)을 제정하여 노래음반을 검열하였는데, 일제하의 다수 법률이 일본에서 시행된 후 식민지 조선에서 시행된 것과 달리 음반법령은 식민지 조선에서 먼저 제정‧시행되었고, 일본의 음반검열 사항이 출판법 내에 속해 있었던 것에 반해 식민지 조선은 개별 법률로 그것도 취체규칙으로 제정하여 시행하였다. 또한 일본의 음반검열 처분은 행정처분인 것에 반해 식민지 조선은 사법처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처럼 음반검열이 식민 지배를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검열 내용과 금지된 음반들을 다루었다. 
 
타향의술집음반레이블
1938년 8월 11일 치안방해로 가두연주가 금지된 ‘타향 술집’ 음반
(조명암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오케 12156-B, 1938년 8월 발매)
 
 
질문 6(제6장). ‘일제는 연예흥행(공연)을 어떻게 검열했는가?’ 일제는 연예흥행도 검열했는데, 흥행취체규칙(1910)을 제정하여 흥행을 사전검열하였고, 공연 시에는 공연장에 경찰을 임석시켜 현장검열도 시행하였다. 그 검열 내용을 살펴보았다.
 
질문 7(제7장). ‘일제는 공연예술인을 어떻게 통제했는가?’ 일제는 노래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주체인 연예인(가수)도 통제하였다. 조선흥행등취체규칙(1944)을 제정하여 ‘공연예술인 등록제’를 시행하였고, 공연예술인 자격시험제인 기예증 제도를 시행하여 기예자증명서(기예증)을 가진 자만이 공연활동을 하도록 허가하였다. 그 통제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예증사본 일제강점기
대중음악가 현경섭(玄景燮, 1913~?)의 기예자증명서(경기도 제344호, 1944)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질문 8(제8장). ‘일제는 전쟁 시기에 노래를 어떻게 검열했는가?’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시체제로 돌입하여 레코드신취체방침(1938)이라는 전시 상황을 반영한 보다 강화된 노래검열 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적성음반일소운동을 전개하여 적국 노래음반을 금지, 단속하였는데, 그 검열 내용과 단속 과정을 살펴보았다.
 
질문 9(제9장). ‘일제의 노래검열 기준과 처분 사유는 무엇이었나?’ 조선총독부의 검열 기준으로 일반검열표준을 제정하였고, 처분 사유로 치안방해와 풍속괴란을 적용하였다. 특히 외지(식민지)특수사정론이라는 논리를 적용하여 일본의 검열 기준에 없는 내선융화 저해, 민족의식 앙양, 조선 통치정신 배반, 조선 통치상 유해 등 내용을 적용하는 등 근본적으로 검열 목적이 사상검열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 검열 세부기준과 사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질문 10(제10장). ‘일제의 노래검열 전략은 무엇이었나?’ 일제의 노래검열 전략은 사전, 사후의 이중 검열로 생산-유통-소비의 전 과정을 검열하였고, 노래 텍스트 검열에서 관련 매체와 행위검열 및 인적 통제까지의 관련된 전 영역에 대한 전일적 검열전략을 취하였으며, 제도적 검열 과정 이외에 ‘자기검열’이라는 비제도적 사전검열체계를 구축하였다. 심지어 출판관계자, 음반관계자, 흥행관계자 등 민간관계자와의 간담회마저 사전통제 단계로서 구축하여 활용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노래검열 전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제의 문화적 지배체제였던 노래검열
 
노래검열은 식민지 조선의 문화적 지배체제의 하나였고, 일제의 식민 지배체제에 위배되거나 가치기준을 깨뜨리는 저항행위 제거 및 통제에 활용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노래는 전시체제하에서 검열을 넘어 국민총동원의 일환으로 국민 교화선도와 체제 선전선동의 도구로 동원되기도 했다. 곧 일제가 검열했던 것은 노래가 아닌 노래가 매개한 의식이었음을 살펴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