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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전략
소통으로 모으고, 협업으로 완성하다
  • 정용상 사무총장
새로운 20년을 여는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와 주권을 지킨 20년, ‘21세기형 집현전’으로 도약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키고, 헌법이 명령한 영토·해양주권을 수호하는 기관이다. 재단은 국가를 지키는 등불이자 방패이며, 이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사명감을 공유해야 한다. 그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높은 전문성과 긴밀한 협동이 필요하다. 또한 분명한 국가관과 애국심, 그리고 조직 내 강한 소통과 통섭, 그리고 통합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요즘 국내외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빠른 변화 속에서 대응의 기회를 놓치면 역사와 국가 주권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현재의 환경은 2006년 재단 창립 당시보다 재단에 더 많은 연구와 정책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외의 변화는 재단의 역할 확대와 역량 강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의 기대에 응답하려면, 먼저 내부 개혁을 통해 구성원이 함께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신뢰다. 신뢰를 바탕으로 부서 간 경계를 낮추고, 협업의 구조인 강강술래 대형을 만들어 하나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통해 조화와 협조, 융합과 복합, 연합과 화합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한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재단이 글로벌화·21세기화·청년화를 향한 소통과 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영토·해양주권을 지키는 ‘21세기형 집현전’으로 웅비하길 바란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론의 플랫폼이 되고, 그 논의가 미래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역사 속에서 재단의 새로운 길을 함께 찾아가기를 제안한다.
 

역사에서 찾은 소통과 통합의 길
 
❶ 세종이 남긴 해법: “연결하라. 그러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국난의 순간, 세종은 한 가지를 거듭 강조했다. “연결하라!”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추진해 온 일이라면 중간에 끊지 말고, 계승 발전시키라는 뜻이다.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현재로 잇고, 당대의 인재 사이를 연결하며, 그 성과를 다시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세종은 나라가 어려울 때 “모든 것이 왕의 잘못”이라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문제의 책임을 온전히 떠안았다. 동시에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 제안하라며 언로를 열었다. 올라온 제안은 실행으로 옮겨 백성을 이롭게 하는 소통을 실현하였다. 이처럼 나라 경영의 근본을 백성에게 두는 민본(民本) 정신은 ‘소통과 통합’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 힘은 내우외환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종은 사회적 약자 보호정책을 실시해 양극화와 불공정을 바로잡고, 정의와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한글 창제 또한 “백성이 억울함을 풀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소장(訴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조세 평등을 담은 공법(세법) 개편, 과학기술 진흥 역시 백성의 삶을 더 낫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그 결과 당대 최고 수준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이 만들어졌고, 더 나아가 노비에게도 출산휴가 90일, 남편에게 30일을 부여하는 등 국민을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결국 세종이 지향한 것은 한 가지였다. 사람을 중심에 두는 정치, 즉 인본주의다. 오늘날과 같은 대전환기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복잡할수록 세종이 남긴 해법을 기억하자. “연결하라. 그러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은 세종의 소통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❷ 퇴계가 남긴 해법: “먼저 겸손하라. 그리고 경청하라”
퇴계 이황은 말로만 인권을 이야기하기보다, 실천하는 인간 존중을 삶의 가치로 삼고, 학문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을 산 선비다. 그는 학문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수양과 실천윤리를 강조했다. 그의 대표 사상인 경(敬)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늘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를 뜻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배움은 나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며, 학문을 단지 지식이 아닌 ‘도(道)’의 길로 보았다. “어찌 자신만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겸손을 실천했다. 그 겸손은 관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56세의 퇴계와 30세의 젊은 학자 고봉 기대승은 나이와 지위, 거리를 넘어 8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했다. 이것이 ‘사단칠정 논변’이다. 퇴계는 고봉이 자신의 견해를 반박해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검토하고  수용했다. 35세 연하인 23세 청년 율곡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퇴계는 율곡을 ‘공’이라 부르며 예를 갖추고, 함께 학문을 토론했다. 제자들에게도 함부로 “너”라 하지 않고 경청과 존중으로 대했다.
 
퇴계는 왜 이토록 모든 사람을 존중했을까? 그것은 ‘너와 나는 하나(物我一體)’라는 그가 배운 유학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만인이 한 형제요, 만물이 이웃이라면 사람과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삶을 지향했다. 지식과 실천이 쉽게 분리되는 오늘의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퇴계의 사상은 결국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그는 지식보다 성찰을, 경쟁보다 공존을, 권력보다 겸손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따르게 한 퇴계의 마음가짐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가 아닐까?
 
❸ 서애가 남긴 해법: “준비하라. 위기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서애 유성룡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고도 단호하다. “늘 철저히 준비하라.” 준비 없는 낙관, 책임 없는 권력, 분열된 조직은 시대가 달라도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결국 자기 객관화에서 나온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외부의 위기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내부의 부패와 나태함, 그리고 준비 부족이 초래한 재앙은 멸망으로 이어진다. 충언을 불편해하고, 다른 의견을 적으로 돌리며, 당장의 안정을 위해 위험을 외면하는 태도, 이런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재앙이 반복된다. 
 
서애는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라며 “준비하라”를 강조했다. 이러한 서애의 교훈은 오늘날 역사 전쟁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우리 재단에게 평화로울 때 위기를 생각하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❹ 도산이 남긴 해법: “함께하라. 큰 일 앞에서 갈라서지 말라”
대공주의는 국권을 회복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하고 전 세계에서도 이를 실현하자는 주의다.
 
국권을 잃고 임시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독립운동 진영은 국내와 해외로, 또 노선과 이념으로 갈라지며 극심하게 분열됐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은 임정 내부에서도 깊어졌다. 이러한 분열을 가장 큰 위기로 본 도산은 ‘대공(大公)’을 내세웠다. 도산이 제시한 대공주의는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민족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자기 주장에 집착하지 말고 민족 독립이라는 보다 큰 사업을 위해 일치단결하자는 주장이다. 즉, 소아적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대국적 견지에서 함께 힘을 합치자는 애국적 통합정신 또는 대동단결론이다. 
 
도산은 모든 논쟁은 독립 이후로 미루고 힘을 합쳐서 일단 독립을 성취하는 데 혼연일체가 되어 매진하자고 호소하면서 대공주의를 강조했다. 이러한 대공주의의 통합정신은 오늘날 우리 재단이 지향해야 할 협업과 단결의 핵심 가치다.
 

21세기형 소통과 통합의 집현전, 동북아역사재단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다름’은 존중의 근거가 아니라, 대립의 이유가 되곤 한다. 그러나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1,300여 년 동안 말없이 서 있으며, 우리에게 한 가지를 전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조화를 이루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다. 형상은 달라도 공존하는 두 탑처럼 대한민국이 갈등과 분열을 넘어 조화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 있다. 역사를 사랑하는 우리 재단 구성원이라면 두 탑이 전하는 공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단은 소통과 통합, 협업과 분업을 위해 어떤 정체성과 비전을 세워야 할까? 
 
다음 네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구성원 모두가 법치주의의 감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법의식(Legal Mind), 법의 지배(Rule of Law), 적법절차(Due Process)를 조직문화의 기본으로 삼아, 인치가 법치를 밀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통합의 분위기를 일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서 간 불통과 불신의 담을 허물고, 행정 정보를 공유하며, 협업과 분업을 상시화해야 한다. 연구 역시 광역화해 공동연구를 생활화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부 신뢰 회복을 위한 캠페인’을 제안한다.
 
셋째, 재단 거버넌스의 민주성·투명성을 정립해야 한다. 인권경영, 윤리경영, ESG경영, 법치경영을 통해 건전 경영의 기반을 넓히고, 각종 위원회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 동시에 부서 내부의 업무 분장, 지휘 체계,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여 행정과 경영의 합리화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재단 정체성을 고도화하기 위해 역량 확장과 연구의 정책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연구 영역과 분야를 넓히고, 성과가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역사학의 범주를 넓게 확장해 지역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섭하는 연구·정책 플랫폼으로서 재단이 동북아 역사 연구와 정책 개발의 핵심 거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안보, 무역(관세), 경제, 산업, 과학기술, 문화, 역사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충돌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다. 국내외적으로 갈등과 분열, 불신과 불통이 팽배하고, 불공정과 몰상식이 일상화되며, 법치 시스템이 흔들리는 복합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재단은 진리와 정의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 올바른 역사 정립에 앞장서야 한다.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인류의 공존공영을 이끄는 중심축(Linch Pin NAHF)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필자가 그리는 21세기형 소통과 통합의 집현전,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재단2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