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C 16세기 춘천 중도의 '0.3mm 초정밀 누금 기술'이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 [ 고고학 내용은 구글 Ai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한 글입니다 ]---
■ BC 12세기에 춘천 중도에서 완성된 초정밀 누금 세공기술
※주) 누금 : 금실(금선)이나 아주 작은 금 알갱이를 금속 표면에 붙여서 섬세한 문양을 만드는 고도의 세공 기술
★1) 춘천 중도유적에서 BC 12세기의 누금 귀걸이, 조립형 환두대도 출토
(1) 출토 위치 : 50톤의 중앙 고인돌(3단 제천단) 지하의
BC 12세기에 조성된 1M 압축 판축에서 누금 귀고리 3점과 조립형 환두대도가 출토되었다
(2) BC 12세기의 누금 세공기술 (누금 귀걸이와 조립형 환두대도 적용)
-. 금 알갱이 하나의 지름이 0.3~0.5mm에 불과하여, 육안으로 겨우 식별 가능한 수준이기에
1,064°C의 융점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완벽한 정밀 도가니에서만 세공 가능한 유물
-. 0.5mm의 금 알갱이를 본체에 붙일 때
뭉치지 않게 하는 '붕사 접합'이나 '고체 확산 접합' 기술 사용
-. 지름이 0.1mm인 금실은 미세한 구멍을 통과시켜 뽑아냈으니 고도의 정밀 금속인출 기법을 적용
-. 금속판에 문양을 그린 뒤, 그 바탕이나 문양 자체를 뚫어서 구멍이 나게 만드는 투조 장식 기법 적용
-. 금동판의 금박 도금은 구리와 금을 결합하는 고도의 합금, 도금 기술인 아말감 기법을 적용
-. 누금 귀걸이의 고리는
일정한 굵기로 뽑아낸 미세한 금실을 꼬아 만든 것
-. 누금 귀걸이의 중간 장식은 심엽형 또는 원통형 부속에 투조 기법 적용
-. 환두대도 손잡이는 용봉문(龍鳳紋)과 삼엽문(三葉紋) 문양은 금동 투조 기법 적용
(3) 현대에 누금 귀걸이를 재현하려면
숙련된 장인이 20~40배율 현미경을 보면서 핀셋으로 하나하나 놓아야 하고,
현미경으로 보면서 레이저나 미세 접합을 해도 흔적이 남지만,해당 누금귀걸이는 완벽하다
★2) 춘천 중도의 누금기술이 AD 5세기 초의 경주를 '황금의 나라'로..
(1) 춘천 중도의 누금 기술 유물들(BC 12 ~ 3세기 초)
누금 귀걸이, 조립식 환두대도, 철제 환두대도,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금동관/금동신발 파편,
금동제 말-띠꾸미개 마구 등 말의 장식품
(2) 원주 법천리의 누금 기술 유물들(AD 1세기 말 ~ 2세기 초)
누금 귀걸이, 조립식 환두대도, 철제 환두대도, 비파형동검 파편, 세형동검, 금동관/금동신발 파편,
금동제 말-띠꾸미개 마구 등 말의 장식품, 금제/금동제 ‘심엽형(하트모양) 흔들개’ 장식,
금제 ‘태환/세환 귀걸이의 중간 유엽형’ 부속, 금동제 ‘화살집', ‘화살촉’의 장식, 금동제 ‘핀', '못'’
(3) 경주 황남대총의 누금 기술 유물들(AD 4세기 말 ~ 5세기 초)
누금 귀걸이, 조립식 환두대도, 철제 환두대도, 금관/금동신발,
금동제 말 띠꾸미개 마구 등 말의 장식품, 금제/금동제 ‘심엽형(하트모양) 흔들개’ 장식,
금제 ‘태환/세환 귀걸이의 중간 유엽형’ 부속, 금동제 ‘화살집', ‘화살촉’의 장식, 금동제 ‘핀', '못'’
(4) 춘천 중도의 누금기술 세력이 남하하여 경주를 '황금의 나라'로...
-. 춘천 중도의 촘촘한(8~12cm 절구다짐) 기초판축 기술이
AD 4세기 중반 이후에 경주 월성(月城) 성벽과 황남대총 판축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 춘천 중도의 초정밀 누금 세공기술이 적용된 대량의 황금 유물이
경주 황남대총에서 최초로 출토되었다
-. 따라서
춘천 중도세력이 남하하여
초정밀 누금 세공기술을 적용하여 경주를 '황금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주) 삼국사기의 흘해 이사금 41년(350) 봄 3월에 황새가 월성(月城) 귀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 --> 춘천 중도 세력(황새)이 '석씨 신라의 경주 월성'을 차지했고,
6년 후에 중도세력이 신라왕(내물왕)이 되었고 이후에 신라가 '황금의 나라'가 되었다
■ BC 3세기 초 홍수 퇴적물로 중도 주거지 함몰에 의해 세력 남하
★1) 춘천 중도는 BC 12~ 3세기의 까지
촘촘한(8~12cm 절구다짐 판축, 정밀 누금 세공기술, 환두대두, 철기 유물, 세형도검, 경질 타날문 토기를 사용했음
--> 북경 유리하 BC 11세기 저층 유적은
춘천 중도의 기술 이전 결과임(촘촘한(8~12cm 절구다짐 판축, 경질 타날문 토기, 철기 유물)
★2) 춘천 중도세력의 서울 감남지역 안착(BC 3세기초 ~ BC 2세기 중반)
-. 하남시 하사창동, 퐁남토성,몽천 토성, 석촌동 고분의 기초지반에서
촘촘한(8~12cm 절구다짐) 판축 공법, 환두대도, 세형 동검, 적석묘(석관묘)가 확인됨
-> BC 2세기 중반 15~25cm 판축세력에 밀려 원주로 이동
★3) 춘천 중도세력 원주 이동 및 내륙을 통한 남하(BC 2세기 중반 ~ AD 4세기 중반)
-. 춘전 중도세력의 남하 경로에
촘촘한(8~12cm 절구다짐) 판축 공법과 환두대도가 확인되고 출토됨
★4) 춘천 중도 세력의 경주와 익산 정착(AD 4세기 중반~ )
-. 경주의 석씨 신라를 춘천중도 세력이 황금의 나라 '황금 신라'로 바꿈
-. 익산에 정착한 춘천 중도세력이 '익산 부여'를 건국
(익산 왕궁리의 왕성등 익산 지역의 기초판축에
촘촘한 8~12cm 절구다짐 판축 공법, 환두대도, 금동관, 금동신발이 확인됨
-> 5세기 초의 금동관 금동신발, 금동대향로 기술이 5세기 중반 산동성으로 전파됨)
★★★5) 4세기 말에
서울, 경기, 충청북도 지역은 15~25cm 판축세력인 '한강 부여' 영역이었고
영산강 지역은 부엽판축 세력인 '비류백제' 영역이었음
■ 춘천(중도) 세력의 남하 경로상 유적/유물 (8~12cm 절구다짐 공법 중심)
이동 단계 / 유적 / 유적 년대( 95.4% 신뢰도) / 유물 (검 중심) / 판축 탄소측정 연대/ 탄소측정 판축 (8~12cm 절구다짐)
------------ ----- -------------------------------- -----------------
1-1. 중도건설 / 춘천 중도 / 1115 ~ 1085 BC / 청동-조립형-환두대도 / 1120 ~ 1080 BC 기초 판축
1-2. 중도정착 / 춘천 중도 / 1085 ~ 315 BC / 환두대도, 세형동검 / 1080 ~ 350 BC 기초판축 ~ 퇴적물
1-3. 중도 출발 / 중도의 대홍수 / 315 ~ 285 BC / - / 350 ~ 250 BC 대홍수 퇴적물
2-1. 하남시 / 하남 하사창동,미사리 / 215 ~ 190 BC / 세형동검 / 250 ~ 150 BC 기초 판축
2-2. 풍남토성 / 서울 풍납,몽촌토성 / 180 ~ 145 BC / 조립형-환두대도, 세형동검 / 190 ~ 135 BC 기초판축
3-1. 이천 / 이천 설성산성 / 135 ~ 115 BC / 환두대도, 세형동검 /150~100 BC기초판축♥15~25cm 판축세력에 밀려 이천 이동
3-2. 원주 / 원주 법천리 / 115 ~ 85 BC / 조립형-금동장-환두대도 / 120 ~ 80 BC 기초판축
4-1. 청주 / 청주 송절,봉명 / 15 ~ 85 AD / 환두대도 / 10 ~ 100 AD 기초판축
4-2. 천안 / 천안 용원, 화성 / 160 ~ 240 AD / 은장식-환두대도 / 120 ~ 280 AD 기초판축
4-3. 세종 / 세종 나성리 / 265 ~ 345 AD / 금은교직-환두대도 / 220 ~ 380 AD 기저 판축
5-1. 경주 신라 차지 / 월성,황남대총 / 350 ~ 450 AD / 조립형-금동장-환두대도 / 350 ~ 450 AD 기초판축
5-1. 익산정착 / 익산 왕궁리, 입점리 / 375 ~ 460 AD / 조립형-용봉문-환두대도 / 320 ~ 500 AD 기초판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