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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STORY
메이지 일본 근대산업유산 세계유산 등재 10년, 규슈 지역을 돌아보다
  • 안재익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메이지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지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 제강, 조선, 석탄산업 유산군(이하 일본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결정했다. 이들 유산군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 과정에서 한국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산업시설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지를 두고 한일 양국 간에 이견이 노출되었고, 이 문제는 한일 간 역사 현안으로 떠올랐다.


결국 이와 관련해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군함도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라는 점을 충분히 전시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었다.


강제동원의 기억과 기록을 찾아서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지역사회는 이들 세계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개하고 있을까.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올해 5월 말 메이지 일본 근대산업유산이 집중된 일본 규슈 지역 일대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살펴본 유적은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자리잡은 야하타(八幡)제철소 시설이었다. 이곳은 야하타제철소를 1910년대 이전의 산업혁명기 시설로만 소개하고 있을 뿐, 1930~1940년대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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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타제철소 전망대(2025.5.24. 강승우 촬영)

 

다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나가사키 지역의 일본 근대산업유산 관련 전시를 보았다. 나가사키시(長崎市)의 유명한 근대산업유산으로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軍艦島)탄광 유적, 다카시마(高島)탄광 유적 등이 있다.

이들 탄광 유적에 관한 전시 시설인 <군함도디지털뮤지엄>과 <다카시마석탄자료관>은 섬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일상을 회고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민간 업자들이 제공하는 페리 상품을 통해 군함도, 다카시마 두 섬에 상륙해서 직접 유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군함도에 설치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내판에는 1910년 이후 하시마의 역사나 한국인, 중국인 강제노동에 대한 설명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가이드는 주로 1910년대 이후 지어진 거주 시설에 대해서만 상세히 설명했을 뿐, 전시동원체제하에서 행해졌던 한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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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전경(2025.5.27. 강승우 촬영)

 

그러나 규슈 지역의 일본 근대산업유산 관련 전시에 한국인 노동자 관련 내용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가와시(田川市)석탄‧역사박물관>에서는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가옥 전시 안에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중국인 강제연행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가 이곳에서 일했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전시관 뒤에는 민단 다가와지부가 건립한 ‘한국인 징용 희생자 위령비’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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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와시석탄‧역사박물관에 있는 한국인 징용희생자 위령비(2025.5.24. 강승우 촬영)

 

또한 오무타시(大牟田市) 인근에 자리잡은 미이케(三池)탄광 만다갱(万田坑) 관련 전시 시설인 <만다스테이션>에서는 연표와 팸플릿을 통해 한국인 노동자들이 ‘의사에 반해 연행되어’ 일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오무타시 석탄산업과학관>의 경우 한국인들이 살았던 숙소의 한국어 낙서를 그대로 옮겨와 전시하면서, 이 지역 탄광에서 일했던 한국인 노동자에 관한 설명을 전시하고 있기도 했다. 이들 전시를 통해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지역 탄광에서 일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만, ‘강제동원’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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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타시 석탄산업과학관>에 전시된 한국인 낙서,
한글 “갱”자와 한자로 쓴 ‘朝鮮 京畿道(조선 경기도)’란 글자가 선명하다 (2025.5.25. 강승우 촬영)

 

 

규슈 산업 유산을 되돌아보면서

전체적으로 볼 때, 규슈 지역에 위치한 ‘메이지 일본의 근대산업유산’에서는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약속했던 ‘전체 역사’ 서술과 한국인 강제노동 관련 전시 내용 반영이 전반적으로 충실히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명확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2015년 약속한 ‘의사에 반해’ 징용되었다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나가사키와 기타큐슈의 사례처럼 한국인 노동자의 존재 자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전시 상태는 이처럼 지역이나 전시 시설의 운영 주체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전시가 역사적 사실과 책임을 담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개선 촉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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