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법이자 최고법, 헌법
헌법의 전통적인 사전적 의미는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다. 즉,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을 정립한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며 기본법이다. 이러한 헌법 개념은 근대 한국에서 장정(章程), 국제(國制), 국헌(國憲)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1787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과 프랑스혁명기인 1789년에 천명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기초한 일련의 입헌주의 문서는 주권재민에 기초한 근대 입헌주의 헌법을 세우는 풀뿌리 역할을 해왔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오늘날 헌법은 단순히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법이라는 역할을 뛰어넘어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장을 위한 장전(章典)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이에 따라 근대 입헌주의의 정립 이래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하여 국가의 조직과 구성을 설계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제헌헌법의 전사(前史) - 홍범14조부터 대한민국임시헌장까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에 관한 논의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도 『경국대전』과 같은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법제가 있었지만, 근대국가의 헌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1895년 1월 7일(음력 1894년 12월 12일)에 제정‧선포된 홍범14조는 처음으로 자주독립에 기초한 국정의 민주적 개혁을 천명한 근대국가의 헌법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체계화된 근대적 의미의 헌법이라기보다는 개혁정치의 기본강령적 성격을 가진 규범이었다.
1899년 8월 17일에 반포된 대한국국제는 최초의 성문헌법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문 9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고, 국가 형태는 전제군주국을 천명하고 있다. 19세기 근대 조선의 개국과 서양 헌법이론의 초기 수용 과정에서 나타난 이들 규범은 새로운 개혁정치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강제병합됨에 따라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어 그해 4월 11일에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하고, 9월 11일에는 대한민국임시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헌법은 1925년 4월 7일 개정을 거쳐, 대한민국임시약헌(1927.4.11. 개정, 1940.10.9. 개정), 다시 대한민국임시헌장(1944.4.22.)으로 개정되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제헌헌법의 탄생
대한민국의 법적 기초인 헌법의 탄생 과정을 보자. 광복 후 한국의 정부 수립을 위해 열린 두 차례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넘겼다. 1948년 2월 27일 유엔소총회에서 가능한 지역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결의함에 따라, 그해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총선거에서 선출된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5월 30일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1948년 6월 3일 제헌국회는 헌법기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정부 형태를 대통령제로 하고, 국회는 단원제로 하는 헌법안을 채택하였다. 6월 23일 국회에 상정된 헌법 초안은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하여, 마침내 7월 17일 국회의장이 서명·공포함으로써 당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제헌헌법의 기본 틀은 대체로 현행 헌법에도 유지되고 있다.
제헌헌법 사본(국가기록원 헌법이야기)
『관보』 제1호 <대한민국헌법>(1948.9.1.)
헌법 이념이 구현되는 진정한 문민의 시대를 위하여
한국은 오랜 세월 군부가 통치하는 권위주의정부 시대를 통과하여 이제 문민이 통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문민정부가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려면 과거에 흐트러졌던 국법 질서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문서인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생활 속에 정착시켜야 하며, 위정자들도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꽃을 피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통일을 대비한 헌법 규범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다가올 통일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통일한국의 헌법적 질서에 대한 국민적 논의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80년에 걸쳐 서로 이질적 체제에서 살아온 한민족의 국민적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일헌법의 권력 구조에 대해서도 적극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헌법사를 반추하며
우리 헌법사를 돌이켜 보면, 혁명과 정변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주권자의 의식 속에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정신이 면면히 자리잡아 왔으며, 그것이 오늘의 민주정부 구성에까지 이르고 있다. 혁명과 항쟁의 성취를 통하여 민주시민의 역량을 높일 수 있었고, 불의에 대한 항쟁을 통하여 국민주권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7년에 걸쳐 우리 국민이 쌓아온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의 침전물은, 결국 오늘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로 이어지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설파한 동아시아에서의 “정권 교체 없는 민주주의”를 종식시킨 대한민국의 국민적 저력은 바로 이러한 헌법사적인 환희와 시련 속에서 잉태되었다.
이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권력의 인격화 현상이 사라진 자리에 모든 인류가 주권자가 되는 전자민주주의시대가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의 이념과 목적과 가치와 당위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법의식을 가져야 한다.
77번째 제헌절을 맞으며,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헌법, 국민 통합과 통일을 선도하는 헌법, 주권자인 국민의 사랑받는 헌법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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