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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HF 소식
한일협정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일관계’
  • 전영욱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한일관계를 ‘다시’ 본다는 것

생각해 보면 한일관계는 한 번도 평탄한 길 위에 있었던 적이 없다. 제국-식민지의 관계가 하나의 질서로 강요되던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났지만, 이 과거사는 지금도 서로의 시선과 인식, 감정의 결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서 시작된 양국 사이의 불신은 아직 현재다. 역사의 무게는 양국이 마주한 국면마다 때로는 우호로, 때로는 대립으로 되살아났고, 이는 조정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동북아역사포커스』 13호의 주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다시, 한일관계’이다. ‘다시’라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한일관계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마주하려는 기획의도와 직접 관련이 있다. 두 나라가 쌓아 올린 서사들은 각각의 정치적 각도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았고, 한일관계를 주제로 하는 학술적·사회적 접근도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서로의 관계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변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구조는 60주년이라는 숫자로도 당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조금씩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일관계의 매듭은 양국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풀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시나브로 헐거워지는 매듭을, 우리가 선명히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관계를 무엇이 방해하고 촉진하고 있는지, 신중하게 ‘다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역사포커스 이번 호 기획은 60주년을 평가하기보다 한일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역사 현안과 현실정치의 파고를 ‘계산’하거나 ‘해소’하기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높은지 양국이 다른 모양으로 실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다시 묻고,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쯤일까? 이번에 실린 8편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포커스 표지 전체

 

 

되돌아보고 지금부터 나아가기

필자들은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지역 등의 분야에서 지난 60년의 한일관계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의 의의는 한일관계를 시간으로 기념하려는 게 아니라 그 축적된 시간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전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 각 논문은 학문적 분석이라는 토대 위에서, 한일관계를 보다 다층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로 사유하고자 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과거의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 안고, 협력을 위한 상호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필자들은 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김호섭은 ‘한일관계, 과거 60년, 미래 60년’에서 국력 변화와 세력전이이론, 정치리더십 분석을 통해 한일관계의 흐름을 진단하고 미래의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한일관계는 단지 감정의 충돌이 아닌, 국제정치구조와 정치적 선택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이원덕은 ‘한일수교 60주년의 회고와 전망’을 통해 한일관계를 시대별로 냉전기, 탈냉전기, 미중 경쟁기, 복합 위기기로 구분하고,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동반자관계로의 전환 과정을 설명한다. 민주화와 시장경제라는 공통 기반 위에서 양국이 공유해 온 가치와 규범에 주목한다.

강여린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미일 안보협력’에서 냉전 초기의 반공 협력에서부터 최근 캠프 데이비드 회담 이후 제도화된 안보협력까지, 한미일 협력의 전개 과정을 고찰하고 그 복합적 성격을 분석한다.

김웅희는 ‘새로운 국제통상질서와 한일 경제협력의 방향’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프렌드쇼어링 등 최근 국제통상 환경 변화 속에서 한일 경제가 어떤 방식으로 전략적 상호보완성을 확대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이정환은 ‘일본의 인도.태평양 외교와 한일관계’에서 외교현장을 넘어 양국 사회의 인식 지형에 주목하며, 여론이 한일관계의 외연과 심층 구조 모두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분석한다.

석주희는 ‘한일 지방외교의 역사적 전개와 신뢰네트워크’를 통해 중앙정부 외교의 틀 바깥에서 형성되어 온 지역 간 교류와 신뢰 구축의 역사를 조망하며, 향후 지방외교가 새로운 협력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현안의 무게와 정치의 파고

『동북아역사포커스』의 「체험! 역사현장」과 「NAHF 톺아보기」도 ‘다시, 한일관계’를 바라보기 위한 길잡이를 자처했다. 앞서 소개한 6편의 글이 양국 관계의 변수를 최대한 ‘새롭게’ 노출하고자 했다고 평가한다면, 다음 2편의 글은 역사 현안과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홍석재는 ‘조세이 해저탄광의 비극: 조선인 136명, 해방 80년 만에 귀향 이뤄질까’를 통해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동원되었다는 ‘상식’에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여기에는 한일 시민사회와 한일 정부라는, 결이 다른 두 개의 주체가 등장한다. 강제동원과 인권이라는 역사적·국제적 이슈에 동아시아는 어떻게 공동으로 책임을 질 것인가? 독자들은 기억을 현재로 끌어올리는 힘의 원천과 그 효과에 대해 다시 질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남상구는 ‘한일 역사문제의 구조와 해결 방향’에서 60년 동안 계속되는 역사갈등의 본질이 ‘역사인식’과 ‘청구권’ 문제의 구조적 불일치에 있다고 진단한다. 식민지 지배가 부당하지만 불법은 아니었고, 청구권 역시 법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인식과 부당, 불법, 미해결이라는 한국의 인식 사이에는 과연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결국 60년 이상 축적한 교류의 역사를 어떻게 발디딤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성찰하고, 더 나아가 더 많고 풍부하며 두터운 축적이 필요하다는 대안은 한일관계의 곤란함을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1965년에 맺은 한국과 일본의 수교는 과거가 파생한 수많은 서사를 잠깐 잊자는 합의이기도 했다. 이는 신랄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비판마저도 한국과 일본이 그릴 관계의 미래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 어쩌면 그때의 기대야말로 한일관계의 포석이 되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포석을 놓기 위해 ‘다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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