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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가기
일본군‘위안부’ 기억을 둘러싼 초국적 토론
  • 박정애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SOAS 런던대학교와 국제학술회의 공동개최-

 

 

유럽의 연구자들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다

지난 5월 3일 토요일, SOAS 런던대학교(SOAS University of London) 회의실에서 재단과 SOAS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SOAS는 런던대학교 여러 소속 대학 중 하나로, 동양‧아프리카학(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을 전문 연구하는 대학이다. 학술회의는 주제는 <‘위안부’ 기억의 정치와 국제적 담론(Remembering ‘Comfort Women’: Politics of memory and international perspectives)>이었다. 영국의 3일간 연휴가 이어지는 주말인데도 일반 청중 7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해, 예상보다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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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과 SOAS가 공동 개최한 런던 국제학술회의 참가자들(2025. 5. 3.)

 

 

이번 학술회의는 필자가 지난해 11월에 재단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만난 니콜라이 욘센(Nikolai Johnsen)에게 공동회의 개최를 제안하면서 기획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생산적인 담론과 토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가던 시기였다. 필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에서 벗어나 초국적 관점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일 관계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국내에 소개되는 초국적 시선과 발언들이 ‘보편적 여성 인권’의 권위를 내포한 듯이 유통되는 것도 불편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점령을 경험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역사에 대한 내밀한 이해가 없이, 일본군‘위안부’ 해법을 말하는 영어권 논의를 받아쓰기하는 어떤 태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젠더, 탈식민과 탈냉전을 중심으로 초국적 논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해야만 일상과 전시(戰時) 성폭력 문제, 그리고 그 재발 방지를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책임과 민주적 관계 설정에 대해 비로소 의미 있게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니콜라이 욘센 역시 이 제안에 공감했고, SOAS가 유럽의 연구자들을 모아 이를 위한 공론장을 마련하겠다고 응답했다.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정치와 국제적 담론: 발표와 토론

이번 국제 학술회의는 총 세 개의 부문으로 구성하였다.

제1부의 주제는 <전시 성폭력을 둘러싼 기억 정치, 미래가 된 과거>이다. 전시 성폭력을 둘러싼 기억의 경합에서 언제나 국가나 가해자의 입장이 우선시되고, 그 결과 피해자의 기억은 억압당하고 정당한 언어를 찾지 못한 역사에 주목하였다.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 안연선 교수는 <모순된 기억, 일본군 위안소 이용자들의 ‘위안부’ 관련 서사>라는 제목으로,  전 일본군 출신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안부’ 서사를 구성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전 일본군 출신들은 경멸과 주저가 뒤섞인 감정으로 ‘위안부’와의 ‘연애’나 ‘친밀함’을 언급한다. 이는 병사와 여성의 성적 관계를 ‘위안부’라는 기만적인 용어로 정당화하는 국가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인 SOAS의 크리스 디컨(Chris Deacon)과 요크대학교의 조슬린 쉬(Jocelyn Xu)는 전쟁터에서 재생성되는 남성성의 문제, 그리고 병사와 ‘위안부’의 외상적 유대감(traumatic bonding)이 오늘날 역사 이해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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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국제학술회의 안연선 교수 발표(2025. 5. 3.)

 

 

독일 함부르크사회연구소 레기나 뮐하우저(Regina  Mühlhäuser) 연구원은 <가시성과 비가시성: 나치 성폭력과 연합군 강간에 대한 1945년 이후 독일 논쟁>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기 나치나 연합군의 성폭력에 대한 기억이나 연구가 전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론장에서 이 주제는 여전히 주변화되어 있다. 공론화된다 하더라도 피해자보다는 국가 중심 서사가 더욱 지배적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과 같은 피해자 중심 접근 운동이나 연구는 역시 당사자의 말이나 행보가 전면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이전과 달리 전시 성폭력을 범죄라고 인식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해 책임을 지우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전히 더딘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2부는 <보편적 여성 인권 담론과 지속되는 식민주의>를 주제로, 여성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근절하려는 국제적 노력과 국제법 제정이 19세기 후반부터 꾸준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재발 방지와 피해자 구제가 어찌하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검토했다. 필자는 <인신매매 억제 국제규범과 식민주의,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19세기 후반 이후의 국제법이 여성 인신매매 근절을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 반여성주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20세기 국제 여성 인권 담론의 식민성과 포스트 식민성>을 발표한 김은경 한성대학교 교수는 ‘보편적 여성 인권 규범’이라는 미명 아래 피해 여성들은 ‘비정상적’인 존재로서 수용되고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치부되었다고 비판했다. 토론자인 오슬로대학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Vladimir Tikhonov)와 SOAS 사토나 스즈키(Satona Suzuki)는 ‘국제적’이라는 범주에서도 분리되는 아시아의 경험, 그리고 여기에 반영된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3부는 <기억, 기념, 책임: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세계 곳곳에 설치된 전시 성폭력 관련 기념물과 그 기억 책임에 대해 논의했다. 해리엇 그레이(Harriet Gray) 요크대학교 교수는 <무고한 희생자, 영웅적 생존자, 괴물 같은 가해자들: 성폭력을 말하는 기념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비판 또는 응원에 직면해 있는 기념물들이 유의미한 공공역사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언제나 새로운 역사 서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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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국제학술회의 해리엇 그레이 교수 발표(2025. 5. 3.)

 

 

홍남명 베를린공과대학교 박사과정생은 <기념물을 넘어선 역사: 50년간의 이주 여성 운동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발표에서 디아스포라 여성의 운동과 연대의 차원에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설치 활동을 살펴봤다. 이는 여성, 소수민족, 억압된 역사라는 키워드로 연대한 베를린 한인 여성의 차별철폐와 평화운동이며 현지 풀뿌리 민주주의운동에 기초한다. 따라서 국가적인 압력이나 호소를 통하여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문제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론자 현명호 재단 연구위원과 윤워커(Yoon Walker) SOAS 연구원은 지배 서사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해체함으로써 대안 서사가 그 정치적 의미를 더욱 선명히 할 수 있을 터라고 제안했다. 또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평가는 소녀상이 독일 현지의 정치적‧사회적 배경과 어떻게 만나는지 해명했을 때 더욱 실천적인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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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국제학술회의 제3부 토론(2025. 5. 3)

 

 

피해자 중심 접근 일본군‘위안부’ 역사 서사의 가능성

재단은 매년 한 번 이상 일본군‘위안부’ 관련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해 왔다. 그리고 올해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에서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과 영국은 물론, 독일과 노르웨이에서 발표‧토론자가 참석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대륙 간 학술적 대화를 나누었다. 유럽과 한국 각각의 위치에서 진행해 온 국제적 담론이 영국 런던에서 만났을 때,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동시에 어떤 소통의 가능성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국제 여성 인권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국제성’은 서구 중심성과 인종주의, 식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연구자 및 활동가들은 피해자의 기억과 대안적인 대중 서사, 소수자연대를 통해 새로운 국제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의 발걸음이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사부정론의 공세는 거세지고, 일본군‘위안부’ 담론은 점점 납작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드는 요즘, 피해자 경험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써나가고 초국적으로 소통하는 것만이 이 문제 해결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라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대륙 간 교류와 소통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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