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과 국제 학술 심포지엄의 의미-
2025년 4월, 제221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북한이 신청한 백두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UNESCO Global Geopark)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이는 백두산이 세계적인 지질 명소가 되었다는 상징을 넘어 역사·문화적 내러티브를 아우르는 복합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하여 재단은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백두산의 가치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지질학적 메커니즘 분석에서부터 국제협력 사례, 역사문화적 서사에 이르기까지 총 11편의 주제 발표를 통해 백두산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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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이 증명한 백두산의 세계적 가치
백두산은 신생대 복합화산의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약 45만 년 전부터 현무암질 용암 분출을 시작으로 트라키안암, 조면암에 이르기까지 화성암 조성이 변화해 온 과정은 지질학적으로 완결된 복합화산 진화 시퀀스를 담고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946년경 발생한 ‘천년 대분화(Millennium Eruption)’는 동북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친 초대형 플리니식 분화 사례로 일본, 러시아, 동해 해저까지 화산재가 확산되며, 고기후 연구의 기준층(key bed)이 되었다.
김기범 교수는 이 대분화 당시 기포 형성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분석하며 마그마의 폭발성과 내압 구조 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하였다. 서울대학교 이기윤 박사는 그린란드 빙하 코어 분석을 통해 이 분화가 전 지구적 기후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천종화 박사는 백두산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초대형 분화의 대표 사례라는 점을 들어 단일 사건의 규모뿐 아니라 장기적‧지질사적 가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백두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의 핵심 조건인 국제적 학술 가치와 독보적 지질유산 보유 여부를 모두 충족하며, “백두산은 이미 그 기준을 충분히 넘어선다”고 한목소리로 평가했다.
융합적 가치와 국제협력의 현장
백두산은 화산활동의 산물이자, 생태계와 인류 문화가 교차하는 융합적 지질공간이다. 천지 칼데라, 용암대지, 화산호 등은 지형적 다양성과 함께 생태·관광·지질 교육의 복합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추구하는 ‘자연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화’라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국제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런던대학교 제임스 해먼드 교수는 ‘Mount Paektu Geoscientific Project’를 통해 수행된 한·영 공동연구의 성과를 공유하며, 국제 네트워크의 지속성이 백두산 연구의 미래임을 밝혔다. 부산대학교 윤성효 교수는 ‘백두산 신생대 화산활동사’를 통해 백두산이 동북아시아 지질사에서 차지하는 핵심적 위상을 설명했고, 장철우 교수는 한중 공동 관측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과 향후 계획을 소개하며 국가 간 협력의 실천 사례를 제시했다. 또한 기상청 김연희 연구관은 국가 차원의 백두산 화산감시체계 구축 현황과 필요성을 발표하며, 학술 연구와 함께 재난 대응 인프라의 전략적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 참석자
민족의 산, 세계의 유산이 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조명된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백두산의 역사·문화적 가치이다. 필자는 조선 후기 기행문과 고지도를 토대로, 백두산이 단순한 자연유산을 넘어 민족정체성과 기억의 중심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북한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신청서 내러티브에서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이자 ‘역사·문화 정체성의 중심지’로 규정하고 있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전승에서 백두산은 인간과 국가,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삼지연 일대를 ‘백두의 혁명정신’을 계승하는 성지로 재정의하고 있으며 혁명유적지, 생태보호구역, 문화관광지가 공존하는 종합문화지구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백두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주권을 국제사회에서 공고히 하려는 상징적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나아가 이러한 내러티브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남긴 기행문, 고지도, 제례의식 등의 역사적 전통과도 깊은 연속성을 지닌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과 국제 학술 심포지엄은 백두산이 단일 학문이 아닌, 지질·역사·문화가 교차하는 융합적 유산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단순한 학술적 논의를 넘어 남북 공동의 자연유산 보존, 동북아 국제 협력, 지속 가능한 생태 관광 모델 구축 등 실천적 과제를 향한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
백두산은 이제 한반도의 상징적 봉우리를 넘어, 민족 전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품은 ‘기억의 지층’이자 ‘문화적 원형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구의 시간과 민족의 기억이 만나는 세계유산, 그 이름이 바로 백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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