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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기억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파하는 징검다리, 연변
  • 문상명 한중연구소 연구위원

“니, 세상에서 제일 반짝이는 도시가 어딘지 아니? 연변의 연길이야!!”

연변. ‘연변’이 정확히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연변이 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 땅이라는 것은 아마 전 국민이 다 알 거라 생각한다. 요즘 ‘도치맘’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수지 씨가 조선족의 말투로 연기한 개그 코너 ‘황해’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장첸 역을 맡은 윤계상 씨의 대사 “니 내 누군지 아니? 내 하얼빈의 장첸이야!!!!!”라는 유행어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배우들은 조선족 사기꾼 콘셉트와 범죄자 역으로 큰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 내에서는 조선족 비하 분위기가 적지 않게 생겨났고, 연변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각인되었다.

연변은 어떤 도시일까?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鲜族自治州)를 줄여서 흔히 우리는 연변이라 부르고 중국 발음으로 ‘옌볜[延邊]’이다.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관할하에 있는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이다. 중심 도시가 옌지시[延吉市, 연길시]라 발음이 비슷하여 한국 사람들이 주 전체의 이름과 자주 혼동하기도 한다. 면적은 4만 3,300km²로 지린성의 4분의 1, 서울의 71배 정도 크기이다. 중국 북동부와 지린성 동부에 위치하여 북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백두산 생활문화권에 있는 이 지역의 경제에서 인삼과 담비가죽, 녹용은 ‘동북 3보(寶)’로 알려질 정도로 중요하다. 특히 인삼의 생산량은 세계 1위로 퉁화시는 백두산의 각종 약재로 메디컬벨리를 이루었으며, 옌지는 ‘사과배’ 세계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다.

옌볜은 우리 역사‧문화의 영토이며, 특히 발해의 중심지였다. 조선 후기에 우리 한인이 이주하여 문화를 전파하고 삶을 개척한 공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간도라 불렸던 지역이다. 1952년 9월 3일,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되면서 이주 한인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되었다. 그렇기에 1945년에 순국한 윤동주 시인은 한국인이다. 2025년 현재 기준 인구는 1억 8,949만 명이다. 이 가운데 조선족은 74만 2,000명으로, 옌볜 전체 인구의 35.8%를 차지한다. 한족 인구는 120만 2,100명으로, 전체 인구의 60.3%로 더 많다. 한편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의 인구를 75만 명 정도로 추산하니,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그들이 여전히 한국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민족정신을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MZ 취향 딱 저격한 옌지의 맛과 멋

옌지는 지린성 동부, 백두산 북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하이란강(海蘭江)과 부르하통하(布爾哈通河)가 만나는 광활한 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발해와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일본은 철도를 부설하여 간도의 비옥한 생산지를 독차지하고자 쥐쯔제[局子街: 현재 옌지의 구도심]를 중심으로 간도협약(1909)을 체결했다. 한인들은 두만강을 건너 정착했고, 현재는 옌지 전체 인구의 57%에 해당하는 30만 8,400명 정도가 조선족이다. 인천공항에서 옌지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 국적이 다른 한 민족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각각 한국과 중국 국적을 가졌지만 모두 한민족인 사람들. 누구나 한국말로 소통한다. 깐깐한 중국 공안을 대하기 전까지는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인 듯 착각할 정도다.

옌지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부르하통하를 건너면 중심지인 연변대학까지 불과 15분이면 도착한다. 택시비로 30위안(元), 우리 돈으로 6,000원이면 충분하다. 이미 옌볜의 상징 세 곳은 본 셈이다. 특히 밤이라면 그 진면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옌볜의 밤은 ‘휘황찬란!’ 그 자체다. 부르하통하에 놓인 다리마다 네온 장식이 반짝이고 강변 아파트 120여 채 외벽은 화려한 LED 조명등으로 눈이 부시다. 물 흐르듯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는가 하면 ‘나는 옌지를 사랑한다’,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견고하게 수립하자’ 등 표어가 건물 벽에서 현란하다. 중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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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지에서 한복을 입고 즉석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연변대학 앞은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우리나라 ‘인생네컷’ 사진관이 즐비한 것처럼 조명을 설치한 사진사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객은 한복에 가체를 올린 전통머리, 그리고 메이크업까지 완벽하다. 한국 음식과 전통 복장에 매료되어 옌지의 특별한 관광을 선택한 중국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이다. 코로나19 시기, 한국의 맛과 멋을 느끼고자 옌지를 찾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옌지에만 한복을 대여하는 점포가 무려 600여 개가 넘는다. 연변대학 건너편 한국식 점포가 늘어선 상가인 따홍창(大紅墻)을 찾은 사람들은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 바쁘다. 지금 옌지는 한국 문화를 중국 전역에 전파하는 징검다리이다. ‘붉은 벽’이라는 뜻인 따홍창처럼 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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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 앞 따홍창과 한복을 입은 중국인

 


따홍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한복을 입고 촬영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필자 촬영).

 

옌볜의 관광산업을 이끌어가는 한국 전통문화

옌지의 핫한 관광은 옌볜의 경제를 뜨겁게 바꾸어 놓았다. 2023년 옌볜의 GDP는 379억 1,6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는데, 58.4%를 차지한 3차 산업이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었다. ‌2024년‌에는 더 증가하여 총경제생산량이 1,000억 위안을 초과하였는데, 이 또한 관광 수입 덕분이었다. 특히 백두산 ‘氷雪經濟(눈과 얼음 관광)’과 옌지 조선족 민속문화관광의 효과로 ‌2024~2025년 사이 306만 명(+12.2%) 증가했고, 관광 수입만 43.6억 위안(+5.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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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농악무전시관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국 옌볜의 관광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고자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의 전통을 자신들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든 것은 2006년에 국가무형문화유산 제1차 목록에 선정한 농악무(農樂舞)가 시작이었다. 심지어 2009년에는 ‘중국 조선족의 농악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시켰다. 유네스코의 공식 설명에는, 농악무의 원류는 중국이고 한국과 북한의 농악무는 유사한 문화적 행위라고 규정되어 있다.

“농악무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조선족 거주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북위 40.13~45.25°, 동경 124.37~131.04°)가 주요 지역 기반이다. 인접한 북한과 한국에도 유사한 문화적 행위가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농악무의 원형이 있다는 것을 배제한 채 1927년 왕칭현에서 농악무가 기원했다고 왜곡했다. 우리나라 국가유산청에서 공시하고 있는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농악무’는 없다. 다만 ‘농악’이 있는데, 1966년부터 진주삼천포 농악 등 다양한 지역의 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었고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최근에 중국은 중국조선족비물질문화유산전람관(中國朝鲜族非物質文化遺産展覽館)을 만들어 조선족의 모든 무형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전통음악, 무용, 미술, 노래, 민속 등 10개 항목 300여 개를 조선족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국가급 19개, 성급 90개, 주급에 등재된 항목은 141개 정도이다. 특히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는 농악무, 전통혼례, 전통회갑례, 전통복식, 전통회혼례, 추석, 백종제, 장고춤, 학춤, 퉁소, 가야금, 거문고, 가면무, 물동이춤, 아리랑, 널뛰기와 그네뛰기, 씨름, 삼로인, 민족악기제작기술 등이 있다. 전람관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투먼(圖們)시 강변에 위치하는데, 왠지 앉은 자리에서 코를 베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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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을 석류 씨앗에 비유한 상징물

옌볜을 가보면 어디를 가나 석류를 쉽게 볼 수 있다. 석류가 이 지역의 특산품이어서가 아니라 ‘중국 민족을 석류알처럼 하나로 견고하게 뭉치자’라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중국 모든 민족은 석류 껍데기 안에 들어있는 씨앗이고 조선족은 그중 하나이다. 그래서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조선족 문화의 원류인 한국 전통문화를 자국의 것으로 예속시키는 작업은 가속화하고 있다. 조선족 문화의 원형은 두만강 너머 한반도에 있다. 우리 것이 당연하여 그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원류가 어딘지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중국조선족비물질문화유산전람관 있는 아리랑 영상. 음악도 화면에 나오는 풍속도 익숙하지만 중국어 자막과 옌볜의 풍경이 낯설다(필자 촬영).

아리랑 영상이 옌볜을 배경으로 퍼져나간다. 이 영상을 처음 본 외국인은 아리랑을 어느 나라의 노래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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