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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기억의 장소, 장소의 기억: 상하이·난징에 가다
  • 박정애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동북아역사포커스』 제18호(2026 가을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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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포커스 제18호의 특집 주제는 ‘기억의 장소, 장소의 기억: 상하이‧난징에 가다’이다. 상하이와 난징은 20세기 전반 동아시아에서 제국의 폭력과 그에 맞선 저항이 가장 밀도 있게 겹친 도시다.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폭력에 편승하거나, 저항하거나, 고통받은 기억이 서로 엇갈리고 교차하거나 합치하는 입체적인 공간이다. 상하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면서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가 개설된 도시이기도 하다. 난징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한인 독립군을 길러낸 도시이면서 난징대학살과 전시강간 기억을 간직한 도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서로 얽힌 ‘기억’을 매개로 서로 견제하거나 대립하거나, 또는 손을 잡거나 했다. 이번 특집호에서 주목하는 것은 상하이와 난징이라는 기억의 장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과 중국의 기억 정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그 일은 지금 어떤 형상으로 남아 있으며, 그 형성 과정에서 누구의 기억 정치가 개입되고 조율되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특집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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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공원 안의 매헌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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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학교 제3기 교사가 있던 천녕사 옛터
 
 
「포커스 1: 저항의 기억」에서는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현장이 어떻게 ‘기억의 장소’가 되었는지 따라간다. 
 
전영욱(동북아역사재단)의 <윤봉길을 둘러싼 기억의 전형(轉形)과 정치>는 매헌 윤봉길을 기념하기 위한 루쉰공원 안 매헌 정자의 현판에서 ‘헌(軒)’ 한 글자가 사라진 1995년의 사건에서 출발한다. 한국에는 윤봉길 묘소와 기념관과 서훈이 쌓였는데 정작 폭탄이 터진 상하이 현장만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에는 중일 우호의 기념종이 10년 먼저 들어섰다. 동상이 정자로 낙착되고 준공을 대통령의 방중 일정에 맞춘 과정을 추적한 끝에, 필자는 전유가 중국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짚는다. 매헌 정자는 두 나라가 합의할 수 있었던 딱 그만큼의 크기와 이름으로 서 있는, 가장 ‘정직한’ 기념물이라는 평가다. 
 
이현희(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라는 역사적 장소는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가>에서 상하이·항저우·충칭 세 청사의 발견과 복원 과정을 짚은 뒤, 전시기획자의 눈으로 현재의 상하이 청사를 본다. 1919년부터 1932년까지의 고유한 시간을 지닌 이 장소가 임시정부 통사를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상하이에서의 활동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저자가 제안하는 ‘역사성과 장소성의 동기화’는 우리가 해외 독립운동 시설을 기억 거점으로 삼아 어떠한 기억 실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김정현(가천대)의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와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3년간 존속한 학교의 안쪽을 공간, 조직, 사람, 계승의 순서로 복원한다.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학교를 김원봉, 이육사, 윤세주 등 하나의 장소에 머물렀던 사람의 이야기로 되살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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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 안의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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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샹 위안소 옛터 진열관(사진 제공: 윤은자)
 
 
「포커스 2: 기억의 실천」의 이야기는 숫자와 국가의 언어로 봉합되지 않는 것들로 향한다. 
 
박정애(동북아역사재단)의 <중국의 ‘위안부’ 인식과 기억연대의 현재: 상하이 중국‘위안부’ 역사박물관>은 상하이에서 마주한 비대칭에 관한 글이다. 일본군 위안소가 처음 개설되었다는 도시에서 관련 유적 대부분은 표지 없이 사라졌고, 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박물관은 국가가 아니라 대학이 세웠다. 국가주의 서사에서 탈주하지 못하면서도 국가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민이 연결되는 기억 연대의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박물관의 의미를 검토했다. 
 
윤은자(고려대)의 <긴스이로와 리지샹, 난징에 남겨진 박영심의 기억>은 하나의 어긋남에서 시작한다. 박영심은 자신이 머문 위안소를 ‘긴스이로’로 기억했으나, 2003년 현장에서는 장강 건너편의 리지샹 건물을 지목했다. 필자는 이를 기억의 오류로 처리하지 않고, 난징이 여성들을 집결시켜 전선으로 분산시킨 병참 거점이었다는 구조 속에서 다시 묻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최소한의 조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 어긋난 기억이 증언하는 바가 그것이다.
 
남성원(휘문고)의 <교실에서 찾아가는 역사현장: 전쟁의 현장과 인권교육>은 이 물음을 교실로 가져온다. 인권이 ‘내 몫을 빼앗는 수단’으로 통용되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먼 곳의 고통에 공감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12초마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도심 한복판에 번듯하게 서 있는 리지샹 위안소의 외관과 닭장 같은 방의 낙차 앞에 선 교사의 기록은, 역사교육이 ‘시민적 면역체계’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기억의 장소라는 현장이 왜 필요한지 가장 실감 나게 보여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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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희생자기념관의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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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아로 형무소 전경
 
 
특집 주제와 이어지는 「체험! 역사현장」에서는 기억 공간을 확장하며 그 의미를 짚는다. 
 
이아리(동북아역사재단)는 <애도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2026년 5월의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을 다녀와서>에서 국가의 존재감이 짙어지는 전시의 변화를 읽으며 남은 슬픔은 누구의 몫인지 묻는다. 더불어 애도는 국가의 기획 너머 보통 사람들의 공감에서 온다는 답을 조각상 앞에서 찾는다. 
 
수젯 아라니바(LA 통합교육구)의 <국경을 넘어: 한국이 내게 가르쳐 준 민주주의>는 자국에서 목격한 국가 승인 폭력의 경험을 안고, 독립기념관과 5·18민주묘지, 옛 전라남도청을 걸으며 억압과 해방이 국경을 넘어 교차함을 배웠다는 기록이다. 이 각성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힘은 각계각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조호연(동북아역사재단)은 <객체에서 주체로: 호아로 형무소의 중첩된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서대문 형무소를 연상시키는 호아로 형무소 답사기를 소개했다. 프랑스가 자유·평등·박애와 함께 들여온 단두대, 그리고 독립 이후에도 그 단두대를 물려받아 쓴 국가 권력의 반복을 짚으며, 전시 또한 국가가 만든 내러티브임을 잊지 말자고 당부한다. 
 
「NAHF 톺아보기」에서는 송치중(한성과학고)이 <경계를 허무는 역사 수업을 꿈꾸며: 제3회 한일 역사교육 포럼>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6월 개최한 제3회 한일 역사교육 포럼 참관기를 보내왔다. ‘쇄국’과 ‘개국’이라는 용어에서 고려시대의 ‘침략–항쟁’ 서사까지, 양국 교과서를 나란히 놓고 벌인 토론의 현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는 저절로 남지 않고, 남은 장소도 저절로 말하지 않는다. 기억의 장소는 기록하고 찾아가고 말하고 애도하는 구체적인 행위, 곧 기억 실천을 통해 현재에 살아남는다. 이는 동시에 장소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억의 내용과 방식에 의해 과거의 폭력과 희생은 반복될 수도, 근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역사포커스 제18호를 읽는 독자들이, ‘기억의 장소’를 찾아가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장소의 기억’에 대해 생각하는 가을을 만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