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산업유산과 한국인 강제노동 문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 제강, 조선, 석탄산업’ 유산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할 것을 결정했다. 이들 유산군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 과정에서, 한국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산업 시설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지를 두고 한일 간에 이견이 노출되었고, 이 문제는 양국 간의 역사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2024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의 근대산업유산과 한국인 강제노동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학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은 충분한 합의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유산을 근대화의 상징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동원의 기록을 포함한 ‘전체 역사(Full History)’로 통합 보존·전시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재단은 8월 7일,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다각적 접근: ‘강제동원’의 개념과 ‘산업유산’의 의미>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노르웨이 등 다양한 국가의 학자들이 참석해서, 산업유산을 둘러싼 일본 내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강제동원 역사를 살펴보았다.
재단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일본 근대산업유산 국제학술회의(2026.8.7.)
‘산업유산’ 인식과 ‘강제동원’ 개념의 재조명
이날 학술회의는 총 3부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 요시자와 후미토시(니가타국제정보대)는 2024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지역지 『니가타일보』 보도를 분석하며 한국인 강제노동이라는 ‘부(負)의 역사’를 둘러싼 지역 의식의 변천을 살폈다. 박진한(인천대)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사례를 중심으로 일본의 산업유산 담론이 ‘문화재’에서 ‘유산’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국가 공인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 근대산업 유산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그 담론 속에서 한국인 강제노동 문제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에 관한 학술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학술회의에서 발표하는 요시자와 후미토시 교수
2부에서 양지혜(대구교대)는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교육과 언론에 나타난 ‘강제동원’ 서술의 변화를 추적하여 북한의 식민지 경험 기억 방식을 체계화했다. 이어 공준환(충북대)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조사·기소·처벌 과정을 중심으로 강제노동이 전쟁범죄로 다뤄진 양상과 그 한계를 분석했다. 이처럼 2부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 ‘강제동원’ 개념이 형성되고 확산된 과정을 역사학으로 검토했다.
3부에서 현명호(동북아역사재단)는 강제동원 금지 규범의 기원을 1930년 국제노동기구 협약이 아닌 제1차 세계대전기에서 찾았다. 그는 영국의 군수법(Munitions of War Act)과 독일의 벨기에인 추방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비판담론의 전개와 한계를 짚었다. 이어 킴 크리스티안 프리멜(Kim Christian Priemel, 오슬로대)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강제노동’ 혐의가 다뤄진 과정과, 이것이 자우켈(Sauckel), 슈페어(Speer) 등 피고인들의 유죄 판결에서 핵심 근거가 된 배경을 조명했다. 이 세션에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시 ‘강제노동’ 및 ‘강제동원’ 개념이 서구 사회에서 어떻게 확립되고 변화했는지 모색하였다.
학술연구를 통한 정책 제안의 첫걸음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일본 사회가 자국의 근대산업유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하고,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강제동원’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화해 왔는지에 관해 논의했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관해 짚어보았으며, 유럽과 미국 등 한국과 관점을 달리하는 입장에서 강제 동원 문제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에 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한 번의 학술회의만으로 이처럼 큰 주제에 관해 충분한 학술적 성과를 올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 주제에 관한 후속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