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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중국의 전략과 다층적 질서에 관한 진단
  • 차재복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위원
『현대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질서와 담론』
 
세계는 지금 미중 관계, 중국의 세계 전략, 그리고 한국의 선택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중국의 부상’으로 표상되는 단일한 주요 행위자로서나 추상적인 ‘중국 위협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면서 중국이 어떤 질서 구상과 전략적 행위를 통해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 관여하고 있는지가 국제사회의 핵심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학술 담론에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독 양자 회담에서 독일 총리가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에게 대중국 전략에 대한 인식을 직접 질문한 장면은, 유럽 역시 중국 문제를 자국의 전략 선택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올해 1월 8일에 열린 싱가포르의 리셴룽 전 총리가 동남아연구소(ISEAS–Yusof Ishak Institute, 싱가포르) 주최 Regional Outlook Forum 2026 기조연설에서 “동아시아의 향후 전개는 미·중 관계와 양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진단은, 이 문제가 동남아를 포함한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도 공통의 전략적 고민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전략 인식의 전환과 ‘질서·담론’의 분석틀
 
『현대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질서와 담론』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약 2년 전부터 기획된 국제공동연구의 성과를 집약한 연구서다. 이 책은 시진핑 시기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군사·경제 정책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질서 구상과 전략 담론이 결합된 분석틀 속에서 조명한다. 
 
현대중국표지
 
 
특히 중국이 ‘중국 굴기(中國崛起)’와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자기 서사를 통해 제시해 온 국가 목표와 대외 전략은, 주변 외교와 대국 외교, 제도적 구상뿐 아니라 역사 인식과 문명 서사, 질서 담론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작동해 왔음을 강조한다. 민병원(이화여대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듯, 중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인식은 냉전 이후의 발전·통합 프레임에서 역사·문명·질서 경쟁의 프레임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책은 이러한 인식 전환 자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미·중 경쟁과 동아시아 질서의 다층적 전개 
 
이 책은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글로벌 구조,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재편,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외교 역학이라는 세 층위를 교차 분석한다. 
 
김한권(국립외교원 교수)은 포스트코로나 이후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속에서 중국의 대북정책과 북․중 관계가 협력과 도전이 병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분석한다. 
 
차재복(필자)은 시진핑·아베 신조 시기의 중․일 관계를 전략적 도전과 제한적 협력이 병존하는 관계로 규정하며, 특히 현재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둘러싼 국가전략과 상호 인식이 동아시아 질서에 미치는 현재적·잠재적 영향을 규명한다. 
 
이동률(동덕여대 교수)은 중국의 해양강국화 전략이 남중국해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베트남과 필리핀의 인식과 대응을 통해 비교 분석한다.
 
람 펑얼(Lam Peng Er, 싱가포르국립대 선임연구원)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미․중 경쟁 속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모색하고 관리해 나가는지를 분석한다. 
 
여유경(경희대 교수)은 당–국가 체제하의 기술·경제 전략이 외교·안보 전략과 결합되는 양상을 조명하며, 비군사 영역에서의 전략 경쟁이 동아시아 질서에 미치는 함의를 제시한다. 
 
니콜라 카사리니(Nicola Casanini,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선임연구원)는 유럽의 대중국 정책이 가치 중심 접근에서 전략적 경쟁과 선택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분석하고, EU–중국 관계를 동아시아 질서 변화와 연동된 구조적 현상으로 해석한다.
 

한반도와 한국: ‘협력적 전략 행위자’의 개념 제시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이 책은 한반도를 중국 전략의 주변이 아닌 동아시아 질서 형성의 핵심적 매개 공간으로 재위치시킨다. 한국은 더 이상 미․중 경쟁의 수동적 선택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 실용적 균형, 다층적 연대를 결합해 질서 형성에 참여하는 행위자로 분석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협력적 전략 행위자(Cooperative Strategic Actor)’ 개념은 규범적 구호가 아니라,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전략적 선택과 행위의 문제로 재사유하게 만드는 분석적 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향후 한국의 중·장기 외교·안보 및 대외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도 참고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변화하는 러시아의 대중국 인식과 북․러 관계, 인도–중국 관계, 그리고 중국–한반도와 구조적으로 연계된 아세안 사회주의 국가의 전략까지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는 향후 중국·동아시아·한반도를 둘러싼 유라시아와 인도·태평양의 연계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할 것이다. 이 책이 그 출발점으로 한국 학계의 현대 중국 연구를 심화하고 우리 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동아시아 전략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참고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