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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안중근 의사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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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Sullivan

 

사람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나면 그 역사와 유산, 희망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안중근은 하나의 계시라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고무하고 교육시키는 사람이다.

안중근의 이야기는 그가 황해도 해주에서 순흥 안씨 집안에 태어났던 1879년 9월 2일에 시작된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자부심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어서 처음에는 교육에 뜻을 두었다. 그는 농촌 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국가의 단합과 발전에 장애물이 된다고 믿고 8년 동안 농가 교육에 힘썼다. 이후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순교자로서의 운명을 늦추려고 그는 초기의 전투를 피해 천주교 신부 홍석규를 찾아가 은신하면서 그곳에서 몇 달 간 머물렀다. 홍 신부는 안중근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권유했고, 몇 번의 대화 끝에 안중근은 1897년 1월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천주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며,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아들을 신부로 만들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언뜻 보기에 역사는 안중근을 초대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살인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한 것을 알자마자 안중근은 성호를 그렸다. 그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천주교 교리를 어겼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홍콩과 한국의 천주교 교회들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대량살상을 막는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의 행동을 용서했다. 그의 업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안중근이 전라도에서 봉건 지배층의 수탈에 맞서는 동학농민운동을 잠재우려고 한 부농이었던 아버지에게 보낸 지지의 글을 지적한다. 그러나 안중근이 젊은 시절에 한 이 같은 행동은 일부 동학혁명 지지자들이 무고한 백성들을 대상으로 행한 무자비한 약탈과 살인에 맞서는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안중근을 암살자로 보는 시각의 표면 아래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합을 진심으로 열망했던 사람이 있다. 안중근은 한·중·일이 서구 식민주의의 압제에 가장 잘 맞서려면 공동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0년 뒤에 등장했고, 유럽연합은 1993년이 돼서야 탄생했다.

안중근이 동아시아 역사에 미친 영향을 통찰력 있게 살펴보려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가졌던 사상의 차이를 고려해 봐야 한다. 본질적으로 안중근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적인 통합을 옹호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마지막 남은 생을 <동양평화론>을 쓰면서 보냈다.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형 집행을 늦춰달라는 그의 요구는 안타깝게도 거부되었다. 안중근은 한·중·일 간에 ‘평화 지역’을 제안하면서도 각국이 주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겉으로 볼 때 똑같은 목표를 지향한 듯 보이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합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지배권을 가져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제국주의적 사상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안중근은 아시아 은행을 세우자고 제안하는 선견지명을 가졌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을 동아시아의 주요 경제국으로 유지시키는 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예는 1944년이 되어서야 국제통화기금이 창설된 것을 볼 때 그의 선견지명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끝으로, 그의 의거가 폭력적이었다 해도 안중근은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강제 병합하고자 하는 일본의 명령을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허용했다. 사형 직전 최후의 순간에 안중근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구 평화 조직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것은 일본의 독주를 막는 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 자신만만하고 굳건한 국가 건설의 씨앗을 심었다. 안중근의 업적은 남녀노소 한국 국민들의 마음에 자부심을 심어주는 한편,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그를 향한 존경심은 결속과 번영의 미래를 약속한다. 그가 일궈낸 수많은 명예 중 가장 위대한 유산은 그가 동아시아 역사에 특별히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모든 한국 국민들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넷째 손가락의 끝 마디가 빠져 있는 그의 검은 손도장 그림은 한국의 주권 수호 투쟁의 영원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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