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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용
세계화가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어느 국가도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한 국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협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합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경제·교육·기술·정치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의 천연자원과 인적 자본, 정보 자원까지 한데 결집시키고 있다. EU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미국에서 옮겨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 연합체로서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 강점기의 애국지사인 안중근은 연합의 중요성을 맨 먼저 인식하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비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글로벌 리더였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우선 사랑을 꼽을 수 있다. 조국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사회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인 요소이다. 일본 식민 지배 하에서도 안중근은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저술한 원고인 ‘동양평화론’에는 그의 아시아에 대한 사랑, 특히 동아시아에 대한 사랑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는 한·중·일이 참여하는 정치·경제 연합을 결성한 뒤 나아가 인도, 필리핀, 태국 등 다른 국가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테나나 그리스 사람이 아니라 세계 시민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안중근은 한국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아시아의 선각자였다.
안중근이 갖추었던 또 다른 리더로서의 자질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사람들을 교육시켰다. 교육은 한 국가가 강한 경제와 힘을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선진화된 교육제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GDP와 문명률 간의 관계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완벽한 증거이다. 안중근은 이것을 일찍 인식했고 실제로 사람들을 교육시켰다. 예를 들어 그는 국가의 성공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1906년 사비를 들여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웠다. 학생들은 주로 한국인이었지만, 그의 목표는 모든 아시아인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한국인 교육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했다. 리더로서 그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안중근은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교육하는 데서 진정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당시 내각 총리대신을 암살했다. 이것이 잔인한 행동이었든 아니든 우리는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주된 이유가 한·중·일 간의 진정한 평화와 우의의 회복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테러 행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일전쟁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안중근은 일본군과 이토 히로부미를 사실상 지지했지만, 이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그는 한국과 중국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을 쏘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그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저해한 것을 포함해 히로부미의 15가지 잘못을 외쳤다. 사실 안중근 자신은 4명의 일본군을 생포한 적이 있었지만 이를 비도덕적이라 여겨 그들을 풀어준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고려해볼 때, 그가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는 자신의 관심이 언제나 아시아의 평화 유지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안중근은 한국인이었지만, 그의 영혼은 아시아를 향했다. 그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길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이익도 생각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31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도 그의 유일한 희망은 동아시아의 평화였다. “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 일을 했으며, 따라서 내가 죽은 뒤에도 한일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를 바란다.” 사형의 순간에 그는 “아시아의 평화”를 외치려고 했으나, 미처 그러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안중근 서거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동아시아 연합 구상이 다른 아시아 지도자들에 의해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일본의 하토야마 신임 총리,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결속력 강화와 우애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는 동아시아 연합 구성을 놓고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동아시아 연합이 결성될 경우 세계는 정치·경제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무게 중심의 이동을 경험할 것이다. 동아시아 연합은 안중근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꿈이었다. 그의 유해가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와 꿈은 늘 우리 곁에 생생히 살아 있다.
“아시아의 평화, 아시아의 평화, 아시아의 평화.” 동쪽 하늘에서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