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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해리 김(Harry Kim)
울릉도와 인근 소형 섬으로 구성된 우산국을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점령했을 때부터 독도는 한국의 영토였다. 서기 512년의 일이다. 그때 이후로 한국인은 독도가 자국 영토가 아니라거나 울릉도와 분리할 수 있는 섬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 자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다. 옛 역사학자 및 지도 제작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을 잘못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문헌 및 지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울릉도와 독도 등 인근 섬에 대한 주권을 보유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이유는 주변에서 먹을 물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독도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고대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는 데 ‘소홀’했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같은 설명 및 지도표시 상의 오류는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한 잘못된 영유권 주장을 펼치는 데 근거가 되었다. 일본의 잘못된 영유권 주장으로 인해 논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세계 지도상에서 독도는 영유권 분쟁지역처럼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와 관련해 그 어떤 논쟁도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일본 정부가 1905년 독도를 자국 영토로 선언하기 5년 전에 한국 정부는 이미 독도를 울릉도군 구역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본 측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논박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일본 측의 잘못된 영유권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한국인들이 독도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다는 일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1432년 인쇄된 세종실록 153권을 명백한 증거로 제시했다. 세종실록 153권은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에 대해 논하면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언급은 일본은 죽서도가 독도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죽서도는 울릉도 바로 옆에 위치한 섬이다. 현대 지리학자들의 실측 결과에 따르면 울릉도와 독도 간의 거리는 54마일(87km)로, 세종실록에 기록된 거리가 부정확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라고 기록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의 문장 중 두 번째 부분인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다.
한편 일본의 학자인 가와가미 겐조는 독도의 일본명인 다케시마를 주제로 1966년 발표한자신의 주요 논문에서 수학공식을 활용해 맑은 날에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가능성을 부정했다. 겐조가 울릉도에 직접 방문해 독도를 육안으로 보려고 시도해보았는지 여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랬을 것 같지가 않다. 1919년 울릉도에 방문한 한 일본인이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 식민지배 하에 있었고, 오늘날에도 시력이 좋은 사람은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1년 중 55일은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맑은 날이 그리 많지는 않다. 물론 가와가미 겐조가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에 울릉도에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육안 확인 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 그의 수학공식은 이해할 수 없다.
6세기 당시 울릉도 어부들은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맑은 날이면 독도를 볼 수 있었고 독도로 항해도 나갔기 때문에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또한 독도는 좋은 어장이었기 때문에 울릉도 어부들은 자주 독도까지 가서 고기를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류와 온류가 겹치는 해역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6세기 또는 그 이전부터 울릉도 주민이라면 누구나 맑은 날이면 독도까지 항해해 어획활동을 벌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어부들의 본능을 믿는다. 어부들은 독도 해역에서 온갖 종류의 물고기, 해초, 성게, 전복을 잡아들였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옛 어부들의 본능을 믿지 않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필자는 집에 있는 단 음식으로 멀리서부터 개미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새조차도 음식이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 어부의 지능은 개미, 새, 야생동물보다 높을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인간의 지능은 현격하게 높았다. 이제 독도와 울릉도의 다양한 명칭 문제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한때 울릉도와 물릉도라는 명칭이 섞여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독도 역시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돌섬, 독섬, 석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돌섬과 독섬, 석도의 경우 한국인이 사용한 한글과 한문에서 독도와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우산도라는 명칭은 서기 512년 신라가 정복했던 부족국가인 우산국에서 나온 명칭이리라고 본다. 우산도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역사 관련 서적에서 독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고, 그 뒤로는 삼봉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도가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섬’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필자는 삼봉도라는 명칭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거리에서 독도를 찍은 사진 중 대부분은 동섬과 서섬에서 본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섬의 모습을 보여준다. 헷갈릴 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사진들을 보면 독도와 삼봉도가 같은 섬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가지도는 물개의 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예전에는 독도에 물개가 흔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어부들은 독도를 가지도라고 불렀다.
이렇게 다양한 명칭 모두 한국인이 독도의 존재를 알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명칭은 한국 영토로서 독도가 가지는 정당성을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다.
일본의 잘못된 영유권 주장은 과거 한국 역사책에 실려있는 독도에 대한 비과학적 언급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는 역사학자들과 울릉도에 거주하는 어부들 사이의 거리는 15세기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멀었으리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독도에 대한 어부들의 설명과 지도가 두 섬 사이의 거리로 인해 왜곡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잘못된 설명과 지도를 근거로 일본이 독도, 또는 독도의 일본명인 다케시마를 시마네 현으로 합병하는 최초의 제국주의적 행위를 벌였던 1905년까지 한국인들이 독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영토확장 야심은 일본의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에도 잘 나타났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러시아 및 중국과의 심각한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05년 선언 당시 한국 정부가 이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이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당시 한국이 이미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에게 외교권을 내준 상태였고, 중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한국은 구한말 경 일제에 국권마저 빼앗겼다. 15세기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16세기에 어부가족 2가구가 황금어장을 찾아 울릉도와 독도로 항해를 떠났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선언했다. 17세기 당시 시마네 현의 일부였던 오키섬과 비교할 때 독도가 울릉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1881년 일본 정부는 울릉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재확인하면서 일본인의 울릉도 방문을 금지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독도가 울릉도에 부속된 섬이라고 생각했지만,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독도를 울릉도에서 분리해 일본의 영토로 삼기를 원했다.
최근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탈(脫) 식민주의 시대에 남은 식민주의의 잔재를 대변한다. 일본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이미지에 걸맞은 탈(脫) 식민주의적 감수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독도는 6세기부터 울릉도의 일부였으며, 울릉도는 같은 기간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의 영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