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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페이지 내용 : 4 편집자의 글 한국에서 식민지 유산에 대한 성찰은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 져 왔습니다. 해방 이후 독립 국가의 형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인식 되었던 시기에는, 말 그대로 식민지였음을 보여주는 인적·물적 유산의 파괴가 시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곳곳에 남아 있던 황국신민서사지주나 신사 등은 식민지라는 어두운 과거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세리머니처럼 활기차 게 철거되었습니다. 반민특위처럼 식민지의 인적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활동 도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한일회담을 통해 한일 양국의 관계가 다시 규정되기 시작했고, 한국의 경제성장이 식민지 청산의 대 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각종 기념관은 식민 지 ‘유산’과 그 ‘청산’을 가시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광복 50주년에는 유산의 청산이 국가적 사업의 위상을 획득하면서 경복궁의 정면을 막고 있던 조선총 독부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친일’ 진상을 규명하거나 강 제동원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취지 역시 넓은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의 역사 현안을 다루는 것이므로 창립부터 ‘탈식민’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유산에 역사적으로 접근할 때, 당대의 국내외 정세를 매우 중요한 변수로 유의해야 합니다. 해방 이후 냉전의 구심력이 강화 되면서 식민지 유산을 둘러싼 논쟁은 상상 이상으로 단순해졌습니다. 반민특 위의 해체가 보여주듯이 한국의 국가권력은 ‘반공’이란 칼자루를 쥐고 유산의 청산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제국으로부터의 식민지 청 산이 한국 경제의 노잣돈처럼 긍정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식민지 경험이 근대화를 추동했다는 의견도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890년대에 추구된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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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페이지 내용 : 5 편집자의 글 은 ‘반일 反日 ’로 수렴됩니다. 이는 독재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거나 문민정 부의 민주적 성과를 과시하는 일과 궤를 하나로 했기 때문에 정치적 수사인 경 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정되자 비로소 이행기 정의를 수행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산과 청산의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식민지 유산이란 표현은 꽤 대중적이지만, 그것이 구체 적으로 무엇인지를 논쟁해 본 경험은 생각보다 축적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이는 위에서 개략적으로 설명한 역사적 경로 속에서 유산 legacy 이 보 통 잔재 殘在, remnants 로만 취급되었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에 관한 문제 제기는 식민지 유산이 가지는 긍정적인 요소도 함께 봐야 한다 는, 다분히 양가적인 접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지배-복종-타협-저 항 등으로 표현되는 식민지 체험의 다양한 모습이 어떻게 유산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실재했던 식민지 체 험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것이 당대의 우리에게 끼쳐 왔던 영향을 역사적으 로 파악하며, 이로써 ‘식민지 유산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 그리고 이 질문에 관한 열린 논쟁을 지향하고 자연스럽게 ‘탈식민이란 무 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뒤따르게 하는 것, 지금 단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만 들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커스 편집위원회에서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가 이에 관한 문제 를 환기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서 말한 그 방법에 대해, 첫째로 식민지를 경험한 몇몇 지역의 현재를 살핌으로써 식민 지 유산의 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식민지 유산의 현재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지금 한국에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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