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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페이지 내용 : 포커스 I 30 1. 전후 일본의 외국인 법제와 식민지 지배의 유산 전후 일본의 외국인 법제 속에서 식민지 지배 의 유산을 생각할 때, 패전부터 샌프란시스코 강 화조약 발효까지의 7년간은 결정적으로 중요 하다. 구 식민지 출신자의 참정권은 왜 인정되지 않았는지, 민족교육권은 왜 부정되었는지, 조선 인은 왜 외국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조선적 籍 ’ 은 어떻게 생겨났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지 등 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7년간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일본의 외국인 법제 형 성사는 외지인인 조선인을 일본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서 배제하는 한편,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관리체제로 포섭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의 유산은 이러한 조선인 포섭과 배제 과정에서 최대한 활용되었다. 특히 주목해 전후 일본의 외국인 법제 속의 재일조선인 식민주의 유산과 남북 분단 속의 ‘조선적 籍 ’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양교수센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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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페이지 내용 : 포커스 I 31 야 할 것은 국적과 호적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에 대한 주권을 강화조약 까지 유지하며, 따라서 조선인의 일본 국적도 조약 발효까지 변함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은 제국 신민으로서 일본의 경찰권에 복종시키고, 재일조선인의 노동쟁의나 귀환 요구를 봉 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국은 초기 〈기본지령〉 1945. 11. 1 에서 대 만계 중국인 및 조선인은 ‘군사상의 안전이 허락하는 한 해방인민’으로 취급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인을 신민으로 취급하는 것을 용인했다. 한편, 조선인을 일본인과 차별적으로 처우할 때는 호적제도를 활용 했다. 조선, 대만 등의 외지를 통치하면서 일본은 식민지인 외지인 과 일 본인 내지인 을 구분해서 법을 적용하였는데 이때 활용된 제도가 호적이 었다. 내지를 본적지로 하는 자에게는 〈호적법〉을, 조선을 본적지로 하는 자에게는 〈조선호적령〉을 적용했고, 양자의 이동은 혼인이나 입양을 제 외하고는 허용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병역의 대상을 ‘〈호적법〉의 적용을 받는 남자’라는 문구로 규정하면 사실상 일본인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제한할 수 있었다. 전후 일본의 외국인 법제 속에서 식민지 지배의 유산을 생각할 때, 패전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까지의 7년간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일본의 외국인 법제 형성사는 외지인인 조선인을 일본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서 배제하는 한편,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관리체제로 포섭하는 과정이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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