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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페이지 내용 : 후 축적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무라야마 담화는 모든 각료의 동의 하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각료 중 자민당 소속이 하시모토 류타로 통상산업장관 일본유족 , 橋本龍太郎 회 회장 을 비롯해 전부 명이었다 이들 중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담화 발표는 좌절될 수 있었다 8 1 즉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인 무라야마 총리 개인의 역사인식을 반영했다기보다는 일본 정부 역사인 식의 총결산 이었다고 할 수 있다 ‘ ’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의 총리들은 동 담화의 문구를 원용하거나 계승한다고 표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사인식을 밝혔다 정부차원의 담화나 성명도 무라야마 담화의 문구를 그대로 답습해 왔다 다만 무 , 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조사 연구를 뒷받침하지 않은 결과 일본군 위안부 나 난징대학살 등 ㆍ , ‘ ’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갈등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편 년 고이즈미 총리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의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라는 2005 ‘ ’ 문구를 삭제했고 년 아베 신조 총리가 발표한 담화는 사죄와 반성의 대상을 년 , 2015 1931 安倍晋三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축소했다.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년이 지난 년이 되어서야 6 1951 시작됐다 그러나 년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양국의 역사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로 인해 교 35 섭이 중단되기도 했다 쟁점이 되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것이었고 둘째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에 피해를 끼쳤느냐 발전에 기여했느냐는 것이었다 , 한국은 일본의 지배가 원천적으로 불법이고 무효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조 , 약에 따른 합법 통치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5 년에 걸친 교섭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역사인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고 국교정상화를 단행했다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 여부에 대해 기본조약 제 조에 2 “1910 8 22 년 월 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 already null and void .” ‘ ’ 임을 확인한다 라고 각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게 기술했다 이미 의 시점을 한국은 조약 당시로 일본은 년 한국 정부 수립 때로 해석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식 , 1948 민지 지배는 부당했지만 합법이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1965 1 17 년 월 일 한일협정 조인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상은 椎名 三 悦 郎 “ ” 양국 간의 긴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며 깊이 반성한다 고 발언했다 2 20 “ 월 일 이동원 외무부장관과 시이나 외상 공동성명에 그와 같은 과거 관계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명하였으며 깊이 반성하는 바라고 말했다 고 명기했다 시이나 외상의 발언과 공동성명은 만족할만한 ”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년 월 일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이 담화에서 한 1982 8 26 “宮澤喜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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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페이지 내용 : 국에 대해서는 년의 일한 공동성명에서 과거의 관계는 유감으로 깊이 반성한다 는 인식을 중략 1965 ‘ ’ 밝혔는데 이것도 앞서 기술한 우리나라의 반성과 결의를 확인한 것으로서 현재도 이러한 인식에는 어 떤 변화도 없다 고 발언했듯이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는 부당했다는 역사인식을 전제로 새로운 한 .” , 일관계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를 명기하고 사죄와 반성을 처음 표명한 것은 호소가와 모리히로 총 細川護熙 리였다 그는 년 월 일 국회 소신 표명 연설에서 과거 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1993 8 23 “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것에 대해 새로이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 고 발언했다 그리고 년 월 일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우리나라의 식민지 ” 1993 11 6 “ 지배에 의해 조선반도 분들이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성명을 일본식으로 개명 당하거나 종 군위안부 징용 등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체험한 것을 가해자로서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진 , 사 드리는 바이다 라고 구체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에 대해 언급했다 ” 陳謝 1998 “ 년 김대중 오부치 공동선언에서는 오부치 총리가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년 전쟁이 끝난 이후 일본이 평화주의를 ” 1945 토대로 국제사회에 공헌한 것을 높게 평가하고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 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밝혔다. 이 선언은 한일 양국 정상이 과거사에 대해 공동의 견해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2010 8 10 “3·1 년 월 일 발표된 민주당의 간 나오토 총리 담화는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 菅直人 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 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 ·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라고 구체적으로 식민지 피 , .” 해를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간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전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단명함에 따라 그 의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에 이어 등장한 아베 차 내각은 아베 총리가 년 월 일 열린 연두기자회견에서 2 2015 1 5 ‘ , ,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하여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고 또한 계 승해 나갈 것 이라 발언하는 등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을 표명했다 하지만 년 월 일 발표된 ’ 2015 8 14 아베 총리 담화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100 여 년 전의 세계에는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의 광대한 식민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은 세기 아시아에도 밀려왔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19 틀림이 없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입헌정치를 내세우며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세계를 휩쓸었던 제 차 세계대전을 거쳐 민족 자결의 움직임이 1 확산되면서 그간의 식민지화에 제동이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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