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연구는 이 문제가 한국과 일본 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른 이래 약 25년 동안 협소하고 어려운 연구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제는 실증 연구 자체에 더해서 지금까지 축적된 논의를 어떻게 사회 전체와 공유하고 확산시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논의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을 사흘 앞둔 8월 11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올해의 기림의 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매년 이맘때 이어 온 이 학술회의의 올해 주제는 앞서 말한 고민을 담아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관점과 지식을 나누는 방법–디지털 지도라는 창, 상하이·난징의 위안소, 역사 교육》으로 정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어느 때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기획하였다. 그간 축적한 일본군‘위안부’ 연구 성과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과 도구, 그러한 방법론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증 연구를 소개했다. 나아가 연구 성과들이 사회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이를 전달하고 학습하는 교육의 영역까지 논의의 폭을 넓혔다. 그 결과 재단 밖에서 찾아온 다양한 청중이 어느 때보다 많이 자리를 함께했다.
개회사를 하는 정용상 재단 사무총장
지도 위에 새기는 피해의 기억
첫 번째 세션은 <디지털 지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와 기억의 장소들>을 주제로 두 편의 발표를 진행했다. 박정애(재단)는 「끝나지 않은 좌표: 일본군‘위안부’ 피해와 기억의 장소들」에서, 올해부터 장기 기획연구사업으로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디지털 지도 구축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학술 연구가 꾸준히 확장되는 반면 대중의 기억은 큰 진전이 없음을 지적하고, 파편화되고 엇갈린 자료들을 규격화된 디지털 데이터로 다시 모아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위안부’ 피해 장소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역사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시론적 질문을 던졌다.
와타나베 미나(wam)는 「일본군 위안소 지도: 그 경위와 과제」에서 일본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을 다년간 운영하며 위안소 지도 사업과 특별전시를 진행해 온 실무적 경험과 고민을 소개했다. 토론에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각각 관련 자료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장미현과 고나경이 참여하였다. 참석자들은 디지털 지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함께 짚었다. 어떤 정보까지 지도에 담을 수 있는지, ‘피해’와 ‘가해’를 지도라는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지, 웹 DB 아카이브의 기술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특히 웹 DB 운영이 자원활동가 한 사람의 헌신에 기대고 있다는 wam의 안타까운 현실도 공유되었다.
제1세션 발표 장면
위안소가 있던 도시, 상하이와 난징
두 번째 세션 <상하이·난징의 일본군 위안소>에서는 송연옥(아오야마가쿠인대학)이 「상하이 위안소」를, 윤은자(고려대학교)가 「일본군 점령기 난징의 조선인 위안소 운영과 조선인 ‘위안부’ 동원」을 발표하였다. 두 지역은 디지털 지도 사업 1년차 과제의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송연옥은 일본군이 점령한 상하이의 도시적 특징과 배경, 위안소의 양상, 그리고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를 소개하였다. 윤은자는 난징의 위안소 운영과 ‘위안부’ 동원이 어떤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현지 조선인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와 당시 교통‧이동 경로를 되짚어가며 상세히 설명하였다. 특히 발표 말미에 고 박영심 할머니가 있었다고 알려진 ‘금수루’가 현재의 리지샹기념관 자리가 아닐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여 청중의 주목을 받았다. 토론에는 장수지(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장원아(역사문제연구소)가 참여했다. 두 토론자는 종전 후 상하이시의 금창(禁娼)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확인된 조선인 여성들의 존재와 중국인 ‘위안부’, 조선의 ‘접객업’ 정책과 난징 유흥업의 관계, 마약으로 상징되는 점령도시 난징의 특징 등을 중심으로 보충 논의를 제시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교실에서 만나는 일본군‘위안부’ 역사
마지막 제3세션 <한일 학생의 미래를 위한 역사 교육>은 가장 실천적인 주제로서,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 직접 닿아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 고쿠부 마리(쓰쿠바대학)는 「일본 역사교육에서 한일 공존과 평화를 위한 일본군‘위안부’ 수업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서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 학습에서 ‘위안부’ 수업이 처한 상황과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 실천을 두루 소개하였다. 현직 역사교사인 맹수용(인창고등학교)은 「일본군‘위안부’ 수업의 성찰과 쟁점, 그리고 실천」에서 자신이 실제 수업에서 활용한 ‘위안부’ 수업안과 학생들의 반응을 상세히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고민을 나누었다. 토론에는 이아리(동북아역사재단)와 문순창(하안북중학교)이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위안부’ 수업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앞으로의 방향과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재단의 교육사업과 관련해서는 사회자 박한민의 토론 참여도 있었다. 실제 사례와 개인적 경험의 공유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세션이었다.
학술대회를 마친 뒤에도 참석자들은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과 시각이 모두 같지는 않더라도, 각자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의식과 연구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중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