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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현장
한국건축문화사 학술대회, 건축으로 우리 문화의 결을 읽다
  • 구도영 한중연구소 연구위원
한 사회의 문화적 산물, 건축
 
인간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는 의식주다. 그중 ‘주(住)’는 인간의 생존과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공간이다. 집은 기후 변화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물리적 거처인 동시에, 가족과 가문, 나아가 공동체의 지속과 권위를 상징하는 포괄적 개념의 공간이다.
 
건축이 지닌 이러한 성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확인된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성당이 지녔던 공간적 중심성, 그리고 수백 년에 걸쳐 세워진 대성당들은 신앙과 권위가 건축으로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한국사에서도 종묘는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과 국가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건축은 단순한 거주 수단을 넘어, 한 사회가 축적해 온 관습과 질서, 기술과 미학을 공간의 구성과 물질적 구조를 통해 구현하는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중국에서는 한국의 전통 건축을 설명하면서 중국 건축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건축이 형성해 온 고유한 맥락과 원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다 보니, 한국의 건축 문화를 중국 체제의 파생물이나 주변적 사례로 이해하는 시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화 왜곡 해법을 모색하는 학술회의
 
2026년 7월 28일 재단은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 호텔에서 <한국 건축문화사: 공간에 깃든 한국의 삶과 사유>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 건축문화의 양상과 특징을 논의하면서 한국 문화 왜곡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한국 건축문화를 폭넓게 조망하기 위하여 생활의 터전인 한옥, 정치와 의례의 공간인 궁궐건축, 신앙의 공간인 불교건축, 방어시설인 성곽건축, 학문의 전당인 서원,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종묘 건축을 세부 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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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궁궐, 서원
 
전봉희(서울대학교 교수)는 한옥만의 형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폈다. 특히 온돌은 한반도 어디서나 사용하지만 한반도 바깥에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온돌이 한옥 방의 조합 방식과 좌식 생활을 비롯한 한옥의 전체적 형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며, 한국인의 삶과 일상이 깃든 주거 공간의 원리를 짚었다.
 
여호규(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고고자료와 중국·일본의 도성 및 왕궁 연구를 폭넓게 활용하여, 고대 한반도 정치제도의 운영 양상이 지닌 특징을 조명했다. 나아가 삼국 고유의 정치제도가 건축물에 반영되는 양상에 주목하여 한국 고대 왕궁이 지닌 로컬성과 보편성을 새롭게 규명하고자 하였다.
 
조재모(경북대학교 교수)는 조선 궁궐의 여러 특징을 조목조목 풀어내며, 창덕궁으로 대표되는 궁궐의 배치와 건축을 한양의 도시적 여건과 조선의 관습이 결합된 창조적 형식으로 해석하였다. 나아가 조선의 서원이 공자가 아닌 조선의 학자를 제향하고 누마루를 주요 시설로 갖춘 점 역시, 한반도의 관습과 조선 지성이 함께 빚어낸 결과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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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 종묘, 성곽
 
신선혜(호남대학교 교수)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불교건축적 특징을 고찰하고, 통일 이후 삼국의 불교건축 양식이 한반도의 지형과 기술적 여건, 주변국과의 문화 교류 속에서 어떻게 융합되고 재해석되며 발전했는지를 소개하였다.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은 고려·조선 불교건축과 함께 조선 종묘를 다루었다. 『예기』가 규정한 ‘천자 7묘, 제후 5묘’ 원칙과 달리, 조선은 불천위(不遷位) 적용을 넓혀 정전을 19칸까지 확장하는 독자적 제도를 이루었고, 이를 통해 종묘가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선형 건축이 되었다는 점을 조명했다. 종묘가 삶과 죽음에 관한 은유로 가득한 형이상학적 공간임을 짚으며, 조선 특유의 건축적 성취를 드러냈다.
 
나각순(서울역사편찬원 전 수석연구원)은 고려와 조선의 도성과 성곽 건축을 소개하였다. 그는 한반도의 도성이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구조를 지니고, 지형 체계에 따라 입지와 건축자재를 달리하며 한반도 특유의 도성 형식을 이루었음을 밝혔다.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종합토론에서는 한지만(명지대학교 교수), 이강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장정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가 토론자로 참여하여, 각 발표에서 다룬 내용을 한국 건축문화사의 큰 틀에서 조망하는 논의를 이어가며 학술회의를 한층 풍부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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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종합토론
 

이번 학술회의는 문화 왜곡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는데, 한반도의 지형과 도시 환경, 오랜 관습과 미의식이 맞물려 빚어낸 한국 건축의 역사성과 성격을 시대 흐름을 따라 되짚었다는 점에서도 값진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