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중도 유적이 '설악산(백악산) 아사달'이며, 춘천 왕릉급 고분은 '단군릉'
--- [ 고고학 내용은 구글 Ai와 장시간 치열한 토론을 통해 완성한 글입니다 ]---
1) 삼국유사의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은 '설악산((雪岳山) 아사달'의 옛 이름
(1) 춘천에서 동지일출선의 1백리 거리에 설악산이 있으니,
춘천 중도가 '설악산((雪岳山) 아사달' 이며, 춘천 중도의 옛 이름이 '백악산(白岳山) 아사달' 이다
(2) 백악산(白岳山)이 고려 이후에 설악산(雪岳山)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다
눈(雪)색이 흰(白)색이기 때문이다
(3) 후한 유희의 어원 사전 석명(釋名) : 雪, 鮮也. 色鮮白也. 눈(雪) = 흰색(白) 이니
백악산(白岳山)이 설악산(雪岳山)으로 산 이름이 바뀐 것이다
2) '춘천 중도동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적석 및 지석묘군 구역)'
(1) 제3장 유구 조사 내용 -> 제2절 적석 시설(또는 지석묘) 기초 지반(판축) 항목
"기저층(풍화암반층) 상부에 점토(Clay)와 사질토(Sandy Soil)를 교대로 타날(Tamping)하여 형성된
인위적 성토층(Embankment)이 확인됨."
(2) 제4장 토층 및 층위 분석 -> 제1절 중앙 구역 수직 단면 분석
"기저층(풍화암반층) 상부에 점토(Clay)와 사질토(Sandy Soil)를 교대로 타날(Tamping)하여 형성된
인위적 성토층(Embankment)이 확인됨."
"이 층은 상부 대형 유구(고인돌 및 적석)의 하중을 지지하기 위해 극히 견고하게 다져진 상태(Hard-packed/경화층)로
토층 단면상 상하 층위 간의 혼입을 막는 폐쇄적 층위(Sealed Context)를 형성하고 있음."
(3) 보고서 내 해당 도면(Drawings)
중앙 구역 토층 단면도(Section Profile), 유물 투영 분포도(Artifact Plotting)
(4) 보고서 내 해당 사진(Photographs)
토층 전경 사진, 유물 노출 사진(In-situ Photo)
■ 춘천 중도 지역 '고대 왕국(백악산 아사달)'의 '왕릉급 고분(단군릉)'
1) 춘천 고대왕조 태동기 (BC 1200 ~ BC 900)
(1) 고분 위치 : [환호 정문 대면 능선]
북한강 상류에서 진입 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하중도 북단 중앙 사구.
거대 주거지인 이중 환호 입구를 마주 보고 일렬로 배치되어, 정면 배산(背山)의 형상
(2) [10톤급 고인돌 지하의 석관묘] 고분 출토 유물(왕릉급 고분 수 : 10기)
비파형 청동검 거푸집, 누금 귀걸이, 천하석 곡옥.
(3) 고분조성 시기 결정에 사용한 유물
환호 안쪽의 제천단(중앙 고인돌) 지하 1M 압축 판축, 누금 귀걸이, 천하석 곡옥.
(4) 고분조성 시기 결정
① 환호 안쪽의 토층별 탄소 년대 분석으로 토층별 유물과 고분 유물 비교로 고분 조성 시기 결정
② 환호 안쪽의 토지 기초 판축과 고분 지면이 해발 69.0m 로 동일.
③ 환호 안쪽의 초기 지반 판축 년대와 누금 귀걸이, 천하석 곡옥이 BC 12세기 이기에 고분 조성 시기는 BC 12세기 부근임.
2) 춘천 고대왕조 전성기 (BC 900 ~ BC 600)
(1) 고분 위치 : [ 중도의 양 끝단 강변 ]
중도의 북서쪽 강변 사구와 남동쪽 말단, 그리고 강 건너 우두동 고지대 진입부에 조성.
강줄기가 꺾이는 지점마다 30~50톤의 거대 상석 고인돌이 있음
(2) [50톤급 대형 고인돌 지하의 대형 석관묘] 고분 출토 유물(왕릉급 고분 수 : 10기)
대형 벽옥 관옥, 붉은간토기, 완성형 비파형동검.
(3) 고분조성 시기 결정에 사용한 유물
환호 안쪽의 벽옥 관옥, 붉은간토기.
(4) 고분조성 시기 결정
① 환호 안쪽의 토층별 탄소 년대 분석으로 토층별 유물과 고분 유물 비교로 고분 조성 시기 결정
② 환호 안쪽의 토지 기초 판축과 고분 지면이 해발 69.0m 로 동일.
③ 고분 지면이 초기 판축과 동일하고, 환호 안쪽의 벽옥제 관옥, 붉은간토기 출토이니 BC 6세기 이전
3) 춘천 고대왕조 쇠퇴기 (BC 600 ~ BC 450)
(1) 고분 위치 : [ 강변 능선을 따라 조성된 석관묘 ]
하중도 동·서 능선 연안과 우두동/신북읍 율문리 일대의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
거대 외형 대신 정교한 내부 구조를 갖춘 석관묘가 강줄기의 곡선과 나란히 배치
(2) [평균 7톤급 고인돌 지하의 석관묘] 고분 출토 유물(왕릉급 고분 수 : 5기)
대형 벽옥 관옥, 붉은간토기, 완성형 비파형동검.
(3) 고분조성 시기 결정에 사용한 유물
환호 안쪽의 벽옥 관옥, 붉은간토기.
(4) 고분조성 시기 결정
① 환호 안쪽의 토층별 탄소 년대 분석으로 토층별 유물과 고분 유물 비교로 고분 조성 시기 결정
② 환호 안쪽의 토지 상판 판축과 고분 지면이 해발 70.0m 로 동일.
③ 고분지면이 상측판축과 동일하고, 환호 안쪽의 벽옥제 관옥, 붉은간토기 출토이니 BC 6세기 이후
4) 춘천 고대왕조 몰락 (BC 450 ~ BC 300)
(1) 고분 위치 : [ 중도 남단 말단부 ]
중도의 가장 낮은 남단 강변과 소양강/근화동 고지대 외곽에 조성
점차 높아지는 수위를 피해 지대가 높은 사구 끝자락에 소규모로 밀집되어 있음
(2) [평균 7톤급 고인돌 지하의 석관묘] 고분 출토 유물(왕릉급 고분 수 : 2기)
비파형동검, 청동 도끼 및 청동 화살촉, 천하석 곡옥, 마제석검.
(3) 고분조성 시기 결정에 사용한 유물
환호 안쪽의 마제석검.
(4) 고분조성 시기 결정
① 환호 안쪽의 토층별 탄소 년대 분석으로 토층별 유물과 고분 유물 비교로 고분 조성 시기 결정
② 고분 상부 종착면: EL 71.5m / 무균 홍수 퇴적층 기저면: EL 71.5m
③ 환호 안쪽의 마제석검 년대가 BC 3세기 이전
■■■ 춘천 중도 환호 안쪽의 중앙고인돌 지하 발굴 내용 설명에서 ■■■
청동기 시대 층위에서 발견된 누금 귀걸이 3점이 고구려 유물이라는 ♥거짓말을 합니다♥
( ▶▶▶ BC 1100년 이전의 유물을 고구려 유물이라고 주장하여 ★★★유물 년대를 1500년 이상 늦춘 거지요★★★)
--> 보고서 내 해당 거짓말 관련 문장
1) "중앙 구역 대형 적석 유구의 기초 지반인 판축 성토층(Embankment) 상면과 그 위를 덮고 있는 적석층 사이의 접경면에서 금제 누금 귀걸이 3점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해당 층위는 상부 하중에 의해 극히 견고하게 다져진 경화층(Hard-packed)으로 유물의 유입이나 교란이 불가능한 폐쇄적 층위(Sealed Context)를 형성하고 있다."
2) "특히 주목되는 점은, 해당 층위에서 청동기 시대의 표지 유물(무문토기, 석기 등)은 확인되지 않는 반면,
고구려 제작 기법의 특징인 누금(Granulation) 방식이 적용된 귀걸이 3점이 공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본 유구의 축조 연대가 기존의 추정과 달리 삼국 시대(고구려)로 편년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정적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