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20페이지 내용 : 포커스 I 20 6세기 고구려가 품은 왕의 남자 온달 강진원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1. 6세기의 위기와 전환 5세기는 고구려의 전성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그즈음 재위하였을 뿐 아니라, 5세기를 거치면서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 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484년 장수왕 72 고구려 사신단이 북위에 머물 때, 북위에서 고구려가 강하다 여겨 이들의 숙소를 남제 南齊 사신단 다음가는 데 둔 것은 그 점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6세기 들어 이러한 상황에 그늘이 드리웠다. 장수왕의 뒤를 이 은 문자명왕 때 491519 까지는 그런대로 종전의 흐름을 이어갔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안장왕·안원왕·양원왕의 치세는 그렇지 못하였다. 광개 토왕의 현손 玄孫 이자 장수왕의 증손인 안장왕은 여러 방면에서 애를 썼 지만 531년 죽임을 당했다. 그 뒤 왕좌에 오른 안장왕의 동생 안원왕은 재위 기간 천재지변에 시달렸으며, 545년 다음 왕위를 두고 벌어진 외 척 사이의 대규모 유혈 충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한 혼란 속 에 즉위한 양원왕은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을 뿐 아니라 나라 안팎의상황

페이지
책갈피 추가

21페이지 내용 : 포커스 I 21 장안성 복원도  출처기경량, 2017, 『高句麗 王都 硏究』,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박사학위논문

탐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