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페이지 내용 : 2 동북아역사리포트 1. 들어가며 근래 국제정치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소다자주의 minilateralism 가 형성되고 있 다는 점이다. 미국·일본·호주 협력체제, 쿼드 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협력체제 , 오커스 AUKUS, 호주·영국· 미국 협력체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기후 위기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제적 혹은 지 역적 대응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다자주의 multilateralism 는 한때 국제정치의 주요 현상이었다. 하지만 많은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어려움이 컸기에 실질적 협력으로 진전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한편 양자주의 bilateralism 는 두 국가 간 힘의 비대칭성, 갈등 요인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관계가 유지되 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며, 두 국가의 협력만으로는 초국가적 문제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응을 도출해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다자주의와 양자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소다자 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는 한미일 협력체제와 한중일 협력체제라는 소다자주의가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 이 패권 경쟁을 치르고 있는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미중 전략경쟁 시 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소다자주의로 여겨진다. 중국은 한미일 협력체제가 대 對 중국 포위망을 강화한다 고 판단하기에, 그 포위망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한중일 협력체제의 이익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 과 일본은 한미일 협력체제 강화를 통해 억제력을 확보하면서도,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한중일 협력체제를 활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중일 협력은 한국과 일본 및 중국 모두 에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제 규모는 2021년 기준 세계 경제의 약 25.4%를 차지했 으며, 3국 간에 ‘돈’과 ‘사람’, ‘물건’의 왕래가 활발하기에 3국의 협력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다. 한미일 협력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연계성 강화라는 측면이 강한 만큼, 안보와 외교 협력에 주 한중일 협력의 역사 최희식_국민대학교 일본학과교수
3페이지 내용 : 3 동북아역사리포트 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 관계인 한국과 일본이 한중일 협력에서 외교 및 안보 협력을 추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 보면 한중일 협력은 안보와 외교 문제 등 민감한 ‘상위 정치 high politics ’ 문제보다는 경제, 에너지, 환경, 재난 재해, 문화·교류 등 ‘하위 정치 low politics ’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2. 한중일 협력의 형성기 19992007년 한중일 협력을 상징하는 한중일 정상회담은 1999년에 개최된 제3차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본 오부치 게이조 小渕恵三 수상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2000년에 열린 2차 한중일 정상 회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으로 회담의 정기적 개최에 합의했고, 한중일 경제협력 공동 연구, 한 중일 국민 교류의 해 2002년 지정, IT 협력을 위한 국장급 전문가 그룹 설치, 환경 정보 네트워크 구축 등 에 합의했다. 2001년 3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한중일 비즈니스 포럼 결성, 경제장관 및 재무장관 회 담의 정례화, 외무장관 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그때까지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경제, 환경, 문화·인적 교류 등 ‘하위 정치’ 문제 위주로 협의가 이뤄 진 데 비해, 2002년 4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 주도로 북한 문제 등 외교적 이슈에 대해서도 논의 했다. 2002년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수상이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선언에 합의했고 2차 북핵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였던 만큼, 일본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이용해서 대북 정책 공조를 도모하 고자 했던 것이다. 동시에 한중일 FTA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에도 합의했다. 2003년 5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채택하여 무역과 투자, 정보통신, 환경, 재 난 예방과 관리, 에너지 협력, 금융, 과학기술, 관광, 수산자원의 활용과 보존, 인적 교류, UN 역할 강화 및 개혁, 초국가적 범죄의 예방과 방지 등 14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외무장관 으로 구성된 ‘3자 위원회’를 설치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안을 실시하고 그 경과를 보고하도록 하 여 실행력을 담보하고자 했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사스 SARS 관련 보건 협력에 합의했다. 이후 신형 인 플루엔자 대책 등 보건 안보 협력은 한중일 협력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2004년 6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14개 분야에서의 협력에 대해, 3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합의 및 보고된 행동 전략 을 채택했다. 2005년 예정되었던 7차 한중일 정상회담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 니 신사 참배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경제장관 회담 등 다른 장관급 회담은 개최되었다. 고이즈미 수상의 퇴진으로 2007년 한중일 정상회담이 재개되었고, 황사 문제 공동 대응, 에너지 전략 대화 구축, 한중일 무역투자협정 조기 체결 등에 합의했다. 그리고 비록 홈페이지 구축에 머물렀지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