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페이지 내용 : 8 동북아역사리포트 이에 오랫동안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이다. 즉 국경을 둘러싼 갈등과 영토 변경을 두고 중립적 시각에서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부 슐레지엔 지방은 석탄과 철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근대 중 공업이 발전한 지역으로, 양국 모두 소유권을 강하게 요구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 영유권을 둘러싼 갈 등이 컸다. 공동 교과서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전 및 폴란드 독립과 함께 일어난 영토 분 쟁, 연합국 개입하에 이 지역이 양국에 분할된 과정을 1쪽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19쪽 ‘중동부 유럽의 분 할’이라는 항목은 1939년 8월 23일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 Joachim von Ribbentrop 와 소련 외상 몰로토프 Wjatscheslaw Molotow 사이의 불가침조약을 비밀 추가의정서 사료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 린은 여기서 중동부 유럽을 양국 영향권으로 분할하는 약속을 했다. 스탈린은 심지어 전쟁 수행에 긴요 한 원유를 독일 제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함으로써 히틀러가 마음 놓고 폴란드를 침공할 수 있게 했다. 공 동 교과서는 이렇게 곳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전쟁 범죄에서 스탈린의 공동 책임을 분명하게 지 적하고 있다. 교과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나치독일의 전쟁 범죄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동유럽에서 독일의 점령정책’이라는 글은 전시 독일의 점령정책이 인종주의적으로 각인되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중동부 유럽에서 원주민에 대한 점령군의 정책은 인종주의, 테러, 강제 노동, 추방, 강제 이주 그리고 살인 행위로 각인되었다. 저항 혐의가 추정되거나 실제의 저항은 서유럽에서보다 훨 씬 더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 폴란드 점령지에서만 800개 이상의 촌락이 보복 행위로, 필자 파괴되었고, 독일군이 점령한 소련 지역에서는 파괴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촌락들이 파괴되 었고 그 주민들은 살해되거나 집단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또한 교과서는 독일 점령군이 전쟁 초기부터 폴란드 문화와 문화재를 파괴하고, 엘리트들을 조직적으 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공동 교과서는 전쟁 중 유럽에서의 저항운동을 다루면서, 한 면에는 1943년 5월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유대인의 절망적인 봉기를 서술하고, 그 오른쪽 지면에는 1944년 8월 폴란드 향군의 봉기를 다 룬다. 이 사건은 독일에서 흔히 유대인 게토의 봉기와 혼동되었는데, 폴란드 학자들은 교과서 대화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폴란드 향군의 봉기에 독일군은 강력한 화력으로 잔인하게 반격했지만, 바이크셀 강까지 진격해 있던 소련군은 향군을 돕지 않았고 스탈린은 서방 연합군의 지원도 거부했다. 향군을 약 화시키고 대신 공산주의자들을 강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1518만의 바르샤바인이 전투에서 그리고 독일 군의 보복 조치로 희생당했다. 공동 교과서는 ‘강제 노동’이라는 내용에서 독일의 잔인한 전쟁 범죄까지폭로한다.
9페이지 내용 : 9 동북아역사리포트 그들 강제 노동자 은 대부분 민간인과 전쟁 포로였다. 하지만 집단 수용소 수감자들도 제국에 서의 노동 투입을 위해 끌려왔다. 그들은 다수가 농업과 군수산업에 투입되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약 1,350만 강제 노동자가 독일 제국에서 노동했다. 그 밖에도 제국 경계 밖 점령 지역에서 수백만의 남녀가 강제 노동을 했다. 강제 노동이 없었다면 정권이 전쟁을 계속 수행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만 거대한 군수물자 생산을 유지하고 주민들에게 식품을 충 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강제 노동은 나치 인종학에서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 사람들 을 절멸시키는 또다른 범죄수단이었다. 1989년의 역사적 전환은 독일-폴란드 관계와 독일-폴란드 교과서협의회 활동 전반에도 근본적인 변 화를 가져왔다. 헬무트 콜 Helmut Kohl 이 이끄는 통일 독일 정부가 오데르-나이세 국경을 국제법적으로 최종적으로 인정하는 국경조약을 승인함으로써 독일-폴란드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 해소되었다. 과거 정책과 관련하여 남은 중요한 문제는 폴란드인 강제 수용소 수감자 및 강제 노동자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기억, 책임, 미래라는 이름의 재단을 세워 독일이 폴란드 희생자에게 총 100억 마르크를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재단의 과제는 특히 민족 간 화해와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나치범죄 희생자의 상속자와 남은 가족들의 이해관계를 보살피는 것이다. 맺음말 독일-폴란드 교과서 협력은 오늘날 쌍무적인 교과서 개선을 통한 국가 간 상호 이해 증진의 가장 성 공적인 사례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특히 다음 세 가지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독일-폴란드 교과 서 협력으로 장기간의 식민지 지배, 두 차례 전쟁에서의 막대한 피해, 영토 갈등 등으로 상호 적대적인 두 민족이 체제와 이데올로기, 군사동맹, 경제력의 차이를 넘어 역사적 화해에 성공한 것이다. 다음으로 독일-폴란드 교과서협의회는 해마다 양국을 오가며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양국 역사가와 지리학자의 진 지한 학문적 대화와 신뢰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많은 학문적 성과를 창출하였고, ‘권고안 완 성→ 권고안에서 미진하게 다룬 문제에 대한 학술 연구→ 공동 교사안내서 제작→ 공동 교과서 제작’에 이르는 교과서 협력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개척했다. 우리는 전후 폴란드와의 역사 화해를 위한 독일의 노력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은 패전 국으로서 남한보다 더 큰 영토를 상실했지만, 1970년 바르샤바 조약에서 그리고 1990년 헬무트 콜 정부 에서 국경조약을 통해 깨끗하게 포기하였다. 강제 노동을 포함한 전쟁 범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에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