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페이지 내용 : 2 동북아역사리포트 교과서를 통해 민족 간 증오가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유럽에서 먼저 시도됐다.1 국가 간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급진적 민족주의 국수주의 가 비등해 촉발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후, 평화주의자 사이에서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1922년 설립된 국제연맹 지적 협력위원회 는 카자레스 결의안에서 교과서 개선을 통해 유럽 평화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정식으로 출범한 국제연합 산하 유네스코는 이러한 취지를 계승하여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를 건설해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풍습 과 생활에 대한 무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의심하고 불신했으며, 여기서 초래된 갈등이 종종 전쟁을 일 으켰다.”라고 선언하고, 교과서 개선 활동을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삼았다. 유네스코를 통한 협력의 대표 적인 예가 독일과 프랑스의 교과서 대화로, 이는 유럽 여타 국가 사이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모델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쟁과 식민지배를 경험한 동북아에서도 유럽의 역사교과서 협 력은 관심 대상이었다. 한중일 간 역사교과서 개선을 위한 모델로 특히 주목받은 것은 독일과 폴란드의 교과서 협력이었다. 앞서 언급한 독일과 프랑스는 대등한 국력과 영향력을 가진 라이벌로, 전후 영토 분 쟁도 미미했고 새로운 유럽 질서를 함께 이끌어 갈 파트너로 쉽게 역사적 화해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 러나 독일과 폴란드의 경우는 달랐다. 폴란드는 1772년 1차 분할 점령 이후 1918년까지 150년 가까이 독 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1939년부터는 히틀러의 나치독일에 더욱 혹독한 수탈과 희생을 당했다. 전후 냉전 시대에 양국은 서로 적대적인 진영에 속했으므로, 역사교과서 대화에서 훨씬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 화해를 위한 공동 교과서 프로젝트 한운석_튀빙겐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펠로우 1 이 글은 집필자가 이미 발표한 논문들과 2020년 출간된 독일-폴란드 공동 역사교과서 제4권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독일과 폴란드 간의 성공적인 역사교과서 대화를 간략하게 집필자 개인 관점에서 소개한글이다.
3페이지 내용 : 3 동북아역사리포트 어려운 장애물과 씨름해야 했다. 따라서 한일 간 역사 갈등 극복을 위해 한일 양국의 역사가와 역사 교 육 전문가들이 지난 수십 년간 독일-폴란드 교과서 대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글에서는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갈등이 어떠했으며, 역사교과서 개선을 통 한 화해를 위해 어떤 노력이 전개되었는지, 그 결실로 최근 독일-폴란드 중학교용 공동 역사교과서가 어 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상충하는 역사적 기억들 1772년 프로이센은 러시아 및 합스부르크 제국과 결탁하여 폴란드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유럽의 강국 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 후 프로이센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폴란드 재분할에 적극 참여하였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포즈난 등 구 폴란드 왕국의 서남부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독일인에 대한 폴란드인의 민족적 적대감을 결정적으로 심화시킨 것은 1939년 나치의 폴란드 침략 및 점령정책에서 비롯된 전쟁 경험이었다. 나치 정권은 폴란드인을 게르만족의 노예로 만드는 유럽 질 서를 계획하였고, 그것에 방해가 되는 폴란드 지도층 전부를 제거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나치는 전쟁 목 표를 잔인하게 실천하였다. 폴란드 인구는 1939년 약 3,500만 명에서 1946년 약 2,200만 명으로 감소했 고, 엘리트층 다수가 암살되거나 전사했으며, 망명지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이 벌어진 6년 동안 그 리고 나치 점령기에 학자 30%, 변호사 57%, 판검사 22%, 의사 39%가 죽었으며, 전체적으로 대졸자의 3분의 1이 희생되었다. 나치의 폭압적 지배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보상은 양 국민의 화해를 위해 장기적 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더욱 어려운 과제는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폴란드 영토는 약 38.9만 제곱킬로미터에서 약 31.2만 제곱킬로미터로 축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전후 질서를 위한 연합국 회담을 통해 오데르-나이세선을 중심으로 1937년 기준 47만 제곱킬로미터였던 독일 제국 영토에서 약 10.2만 제곱킬로미터 남한 면적은 9.8만 제곱킬로미 터 가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폴란드는 동부 지역을 소련에 할양하는 대신 독일의 동부 지역을 얻은 것 인데, 이는 새 폴란드 영토의 1/3에 달하였다. 폴란 1 1. 2. 3. 4. 5. 6. 7. 8. 9. 10. 경계 표시 브란덴부르크 동프로이센 니더슐레지엔 메클렌부르크 포메른 작센 프로이센 작센 오버슐레지엔 서프로이센 1945년 폴란드에 영토 상실 발트해 오데르강 나이세강 코샬린 그단스크 엘블롱크 피와 슈체친 베를린 드레스덴 레그니차 브로츠와프 오폴레 프라하 글리비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1945년 소련에 영토 상실 전후 독일 1945년 전 독일 행정 단위 1 2 2 2 3 3 10 4 4 4 5 6 6 7 8 9 9 전후 오데르-나이세선으로 독일이 상실한영토